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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현등사 동종(加平懸燈寺銅鍾)

공예문화재 | 유물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현등사에 있는 조선시대 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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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명가평 현등사 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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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현등사에 있는 조선시대 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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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보물 제1793호. 범종이 본래 있던 봉선사는 고려 때 창건한 절로, 조선 제7대 세조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1469년(예종 1)에 정희왕후(貞喜王后)의 발원으로 중창된 사찰이다. 이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봉선사의 법당이 소실되자, 1613년(광해군 5)에 다시 중수하고 1619년에 이 범종을 주성하여 소장하여 왔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 봉선사가 위험해지자 말사인 현등사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종의 몸체에 “봉선사종명병서 만력사십칠년기미사월십일일 화주 천보 근작 녹화 비구 현옥 정회 대원 영인(奉先寺鍾銘幷序 萬曆四十七年己未四月十一日 化主 天寶 謹作 綠化比丘 玄玉 正會 大元 塋仁)”이라 새겨져 있어 이 범종이 '만력 47년'인 1619년(광해군 11)에 화주 천보 스님의 주도로 주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종의 외형은 전체적으로 조선 전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중국 범종 양식을 모방하였으나, 종신의 유곽(乳廓)과 중·하대문양 등 부분적으로 한국 종의 문양 요소가 다분히 반영된 조선 중기 한·중 혼합 양식의 모범적인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종의 고리 부분은 두 마리의 용이 머리를 서로 역방향을 향하는 일체쌍두(一體雙頭)의 용뉴(龍鈕)를 형성하였으며, 한국 종의 전형 요소인 음통(音筒), 유곽, 당좌(撞座) 등은 삭제되었다. 굳게 다문 턱을 천판에서 약간 쳐든 용두(龍頭)는 부리부리한 눈과 큰 코, 쫑긋한 귀와 날카롭게 뻗어 올라간 뿔, 천판을 딛고 있는 강직한 발과 비늘이 묘사된 몸통 등이 매우 생동감 있게 묘사되었다. 종의 몸체는 종구 지름이 다소 넓게 조형되어 풍만한 비례감을 느낄 수 있으며, 중간 높이에 3조의 융기선을 돌려 상하로 크게 구획된 모습이다.
반구형으로 조형된 상부 천판(天板) 주연에는 넓은 연판문대가 돌려졌고, 종견 밑에는 평면상 용두 방향을 기준으로 전후좌우 네 곳에 유곽이 배치되었다. 유곽대에는 당초문이 장식되었으며, 유곽 내에는 연화좌에서 돌기된 9개의 유두(乳頭)가 부조된 모습이다. 유곽 밑에는 단순한 당초문대와 화려한 보상화문대가 상하 2중으로 돌려져 중대를 형성하였으며, 종의 하부에도 좁은 입화문대와 넓은 파도문대가 역시 상하 2중으로 섬세하게 구성되어 하대를 이루고 있다. 종복 3조 융기선 바로 아래에는 몸체를 한 바퀴 돌아 장문의 명문이 빼곡히 양주되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특징
현등사 동종은 임진왜란 이후 17세기 초반에 사찰에서 제작된 첫 범종으로서, 종의 외형이 중국 범종 양식을 모방하면서도 부분적으로 한국 종의 문양요소가 반영된 조선 중기 한·중 혼합 양식의 모범적인 조형성을 보여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현등사 동종은 조성 연대가 명확히 밝혀져 있고, 고견사종(1630년) 및 보광사종(1634년)과 매우 유사한 형상을 보여줌으로써 조선 중기 범종의 조형성과 주조 기법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편년 자료를 제공해주는 수작이다. 또한 이 종을 필두로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대대적인 사찰불사와 더불어 17세기 한국 종의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는 점에서 한국 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현등사종」(『한국의 범종 탁본전』,직지성보박물관,2003)

  • 「현등사종」(염영하,『한국의 종』,서울대학교 출판부,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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