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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상무(寶相舞)

    무용작품

     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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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보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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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창사(唱詞)는 1828년(순종 28) 『진작의궤』 부편(附編)에 전하며, 1829년 2월의 진찬(進饌)에서는 악장이 없는 여령정재(女伶呈才)로 추어졌으며 그 해 6월의 진찬에서는 보상반(寶相盤)이라 하여 익종(翼宗) 예제(睿製)의 악장(樂章)을 노래하였다.
    보상무는 보상반이라고 하는 둥근 반을 중앙에 두고 옆에 봉화(奉花) 1인과 봉필(奉筆) 1인이 서고, 춤은 6인이 2인씩 짝지어 3대로 나누어 선다. 먼저 앞의 제1대가 음악에 맞추어 앞으로 나가 꿇어앉아 채구(彩毬)를 들고 일어나 창사(唱詞)를 부른 다음, 미리 준비하여둔 보상반 가운데에 채구를 던진다.
    이와 같이 편을 갈라 채구를 반 가운데에 넣으면 상으로 꽃을 주고, 넣지 못하면 벌로 뺨에 먹칠을 한다. 앞의 제1대가 끝나면 중간의 제2대와 뒤의 제3대가 차례로 제1대와 같은 방법으로 춘다.
    보상무는 그 창사가 당악정재인 포구락(抛毬樂)의 창사와 비슷한 점이 있고, 패를 갈라 채구를 넣는 시합을 하는 점에서 포구락을 모방하여 새로 만든 유희무(遊戱舞)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은 태녕지곡(泰寧之曲)을 연주하며, 칠언으로 된 창사를 부른다. 보상무는 1981년 국립국악원 주최로 문예회관대극장에서 재연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장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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