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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江陵普賢寺朗圓大師塔碑)

    서예문화재 | 유적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현사에 있는 고려 초의 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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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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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현사에 있는 고려 초의 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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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보물 제192호. 비신 높이 188㎝, 너비 98㎝, 두께 20㎝. 통일신라 말 사굴산문의 선승인 낭원대사(朗圓大師)의 탑비로, 940년(태조 23)에 건립되었다. 이 탑비가 있는 보현사는 통일신라 때 지장선원(地藏禪院)이었다. 낭원대사가 96세로 입적하자 왕은 시호와 탑명을 내렸다. 비는 대사가 입적한 10년 뒤에 세워졌는데, 비의 원명은 ‘고려국명주보현산지장선원낭원대사오진탑비’이다. 비문에는 대사의 출생에서부터 경애왕이 대사의 덕을 기려 국사로 예우한 사실 및 입적하기까지 그의 행적이 실려 있다.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인 최언위(崔彦撝)가 짓고 명서예가인 구족달(仇足達)이 썼다. 글씨는 2㎝ 정도의 해서로 필세가 웅경하고 예리하여 금석기(金石氣)가 넘친다.
    귀부(龜趺)·비신(碑身)·이수(螭首) 모두 완전하다. 귀두(龜頭)를 용머리같이 조각한 귀부는 당대의 탑비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수의 쌍룡은 보주를 다투듯 힘차게 투각되어 있으며, 이수 중앙에는 복발과 1단의 상륜 및 화염에 쌓인 보주가 잘 남아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문화재대관  (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 한국의 미  (정영호 감수, 중앙일보사, 1983)

    • 朝鮮金石總覽  (京城 朝鮮總督府, 1919)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선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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