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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목차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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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驪州神勒寺大藏閣記碑)

    서예문화재 | 유적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에 있는 고려후기 에 건립된 사적비.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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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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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에 있는 고려후기 에 건립된 사적비.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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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230호. 높이 1.33m. 신륵사에는 원래 극락보전(極樂寶殿) 서쪽 언덕에 대장각이 있었는데, 그것은 고려 말의 이색(李穡)과 승려 나옹(懶翁)의 문도들이 발원하여 『경률론(經律論)』을 인출(印出)·수장하던 집이었고, 이 비는 대장각의 조성에 따른 여러 가지를 기록한 석비이다.
    『동국여지승람』권7 여주목불우조 (驪州牧佛宇條)에 신륵사의 다른 이름은 보은사(報恩寺) 또는 벽사(甓寺)라는 것과 나옹이 일진당(日眞堂)을 세우고 대장각이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즉 이색은 선왕 현릉(玄陵)의 자복(資福)과 아버지 이곡(李穀) 및 어머니의 추복(追福)을 빌고자 나옹의 문도와 함께 발원하였고 이숭인(李崇仁)에게 명하여 1380년(우왕 6) 2월부터 만들게 하였다. 비문은 자경 2㎝의 해서로서, 직제학 권주(權鑄)의 글씨이다. 권주의 글씨에 대하여 『서청(書鯖)』에는 ‘太古庵碑字 類虞永興(태고암비자 유우영흥)’이라 하였다.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는 장방형 복련대석(覆蓮臺石)과 옥개석(屋蓋石)으로 간단하게 변화되었고, 비신(碑身)의 보전을 위하여 몸체 양쪽을 돌기둥으로 단단히 지탱하고 있다. 이와 같은 조각 형식은 이후 조선시대 석비 조형의 한 형식이 되었다.
    현재 몸체의 문면(文面)은 크게 파손되어 있어 전문을 판독할 수 없으나, 비음(碑陰)주 01)에는 대장단월(大藏檀越) 사부중(四部衆)으로서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를 구분하여 그 성명이 열거되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 『문화재대관』6 보물 4(한국문화재보호협회,대학당,1986)

    • 『朝鮮金石總覽』(京城: 朝鮮總督府,1919)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비의 뒷면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김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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