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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족달(仇足達)

서예인물

 고려전기 「강릉보현사낭원대사오진탑비」, 「충주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 등의 글을 쓴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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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고려전기 「강릉보현사낭원대사오진탑비」, 「충주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 등의 글을 쓴 서예가.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한윤(韓允)·민상제(閔賞濟) 등과 함께 신라 말과 고려 초 구법(歐法)의 대가로 평가된다.
940년(태조 23)에 건립되어 현재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현사에 있는 보현사낭원대사오진탑비(普賢寺郎圓大師悟眞塔碑, 보물 제192호),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정토사지에 있는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淨土寺法鏡大師慈燈塔碑, 보물 제17호), 전라남도 곡성군동리산(桐裏山)에 있는 대안사광자대사탑비(大安寺廣慈大師塔碑)의 글씨를 썼다.
이 두 비 외에는 그의 행적이나 가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기록이나 작품이 없는 실정이다. 보현사낭원대사오진탑비에는 ‘興文監卿仇足達書(흥문감경구족달서)’라고 쓰여 있고,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에는 ‘沙粲具足達書(사찬구족달서)’라고 쓰여 있어서 두 비를 제작했던 당시 구족달의 관직명을 알 수 있다.
후자에서는 그의 성이 ‘구(仇)’에서 ‘구(具)’로 바뀌긴 하였지만, 이 두 기록이 동일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통설이다. 비문은 모두 최언위(崔彦撝)가 지었고, 비문의 서체는 해서로 통일신라시대부터 유행하여 고려시대에도 애호되었던 중국 당나라 초기의 대가 구양순체(歐陽詢體)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 자획의 처리가 매우 예리하고 강경하여 강한 필력을 시사하고 있고 여유있는 공간분할의 묘에서 그의 개성이 역력히 드러난다. 필세가 뛰어나고 장대하여 북조의 의(意)가 있다는 『서청(書鯖)』의 평, 강경하고 굳으며 예리하다는 『동국금석평(東國金石評)』의 평에 부합되는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동국금석평(東國金石評)

  • 『한국금석전문(韓國金石全文)』(허흥식 편저,아세아문화사,1984)

  • 『신고한국서예사(新稿韓國書藝史)』(김기승,정음사,1975)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오세창,계명구락부,1928)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박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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