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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함묘 및 신도비(金德諴墓─神道碑)

    서예문화재 | 유적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조선후기 학자 김덕함의 무덤.   신도비. 시도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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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김덕함묘 및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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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조선후기 학자 김덕함의 무덤.신도비. 시도기념물.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경기도 기념물 제144호. 조선시대의 학자 김덕함의 묘와 신도비이다. 묘역은 200여 평으로 정부인(貞夫人) 경주 이씨(慶州李氏)와 합장된 봉분 1기, 신·구 묘비 2기, 상석(床石) 1기, 향로석 1기, 망주석(望柱石)주 02)과 문인석(文人石) 각각 1쌍이 배열되어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분묘의 예에 따라 묘는 2계절(階節)로 조성하였는데, 상계절은 사성(莎城)주 01)이 둘러진 봉분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묘비를 설치한 반면, 하계절에 망주석(望柱石)주 02)과 문인석을 설치하였다. 또 봉분 앞 중앙에 상석을 2계절에 걸쳐서 놓았고, 계절석(階節石)은 상석의 좌우로 7개를 설치하였다.
    묘비의 비신은 68×24×152㎝이고, 기대(基臺)는 155×71×20㎝의 규모이다. 건립연대는 후면이 마모되어 알 수 없지만, 비문은 박세채(朴世采)가 짓고 증손인 김유(金濡)가 썼다.
    상석은 146×91×30㎝, 향로석은 34×32×38㎝의 규모로 4다리를 형식적으로 새겨 향탁(香卓)처럼 깎았다. 망주석의 높이는 160㎝로, 연봉머리 아래에 연당초문(蓮唐草文)과 6각을 이루는 기둥에는 다람쥐 한 마리씩을 양각하였다.
    문인석은 50×36×150㎝의 규모로 금관조복(金冠朝服) 차림새에 홀(笏)주 03)을 들고 있는데, 조각된 얼굴 표정에서 생동감이 넘치는 등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신도비는 1686년(숙종 12)에 건립하였는데, 비신이 94×28×188㎝이고, 대좌는 147×92×60㎝이며, 대석은 3222×161×20㎝로 봉분에 비해 비교적 규모가 크다.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김수항(金壽恒)이 전액(篆額)하였으며, 증손인 김유가 썼다. 대좌의 4면에는 당초문을 사실적인 기법으로 새겼다. 묘역은 서강잠두(西江蠶頭)에 초빈(草殯)주 04)한 후 1637년(인조 15)경기도 광주 월천리로 이장하였다가 1660년(현종 1) 현재의 위치로 다시 이장하였다.
    이 묘제는 조선중기 전형적인 사대부의 묘제 양식을 잘 보여주면서도 문양은 전통적인 방식을 보이는 등 조선시대 묘제 변천사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무덤 위의 반달모양의 토성
    주02
    무덤 앞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주03
    조복에 갖추어 쥐는 물건
    주04
    관을 한데나 다른 곳에 임시로 놓는 것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8년)
    오환일
    영역닫기영역열기 관련 멀티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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