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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수원중수비(文殊院重修碑)

    서예유적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사에 있었던 고려전기 문수원의 중수 관련 사적비.   중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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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사에 있었던 고려전기 문수원의 중수 관련 사적비.중수비.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1130년(인종 8) 건립. 청평산 문수원(文殊院)의 중수사실을 기록한 사적비이다.
    원래는 비의 상·하부가 깨진 채로 청평사에 세워져 있었으나, 6·25 때 심히 파괴되어 현재는 일부 파편이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문수원은 현재의 청평사로서, 그 전신은 보현원(普賢院)이었다. 고려 예종 때의 명신 이자현(李資玄)의 아버지 이의(李顗)가 춘주감창사(春州監倉使)로 부임하면서 옛날 당나라 승려 영현(永玄)이 세운 백암선원(白巖禪院)의 옛터에 절을 세워 보현원이라 하였다.
    1089년 (선종 6) 이자현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여 불법(佛法)을 연구하고 후진을 가르치면서 산이름을 청평이라 하고, 원명(院名)을 문수라 고쳐 중수하였다. 이자현이 죽은 뒤, 나라에서는 진락공(眞樂公)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그의 사적을 새겨 비를 세우게 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이 비이다.
    비면 윗부분의 비제(碑題)는 ‘진락공중수청평산문수원기(眞樂公重修淸平山文殊院記)’로 자경(字徑) 10㎝의 해서(楷書)이며, 비문은 행서(行書)로 자경 2㎝ 안팎이다. 비문은 김부철(金富轍)이 짓고, 글씨는 탄연(坦然)이 썼다.
    특히, 탄연의 행서는 신라의 영업(靈業)과 함께 해동명적(海東名跡)으로 꼽히는데, 왕희지풍(王羲之風)의 행서로 출발하여 운치가 풍부한 새로운 글씨체를 형성하였다. 비는 심하게 파괴되었으나, 다행히 완전한 탁본(拓本)이 전하여 전문을 읽을 수 있다. 원비는 비신높이 1.35m, 너비 1m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김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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