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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평양성 석편(高句麗平壤城石片)

    서예문화재 | 유물

     고구려시대 평양 일원에 성벽을 쌓을 때 각자(刻字)한 성석의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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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고구려 평양성 석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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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시대 평양 일원에 성벽을 쌓을 때 각자(刻字)한 성석의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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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보물 제642호. 일명 고성석각(故城石刻) 또는 성벽석각(城壁石刻)이라 한다. 원래의 성석에서 각자 부분을 떼어낸 것으로, 현재 2행이 결실되어 크게 두 조각이 나 있고 전체가 여러 조각으로 균열된 것을 석고로 고착시켰다. 지금까지 평양의 고구려시대 벽에서 각자된 성석은 모두 4개가 발견되었는데, 이 성석은 두 번째로 발견된 것이다.
    발견 지점은 1766년(영조 42) 김정희(金正喜)가 평양성 외성(外城) 오탄(烏灘) 아래에서 발견한 기축년명(己丑年銘) 성석과 거의 같은 지점으로 전하는데, 1829년(순조 29) 큰비로 성벽이 무너짐에 따라 발견되었다고 전한다. 1855년(철종 6) 오경석(吳慶錫)이 입수한 것을 아들 오세창(吳世昌)이 보관해 오다가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에서 입수하여 소장하고 있다.
    명문은 7행 27자(자경 약 3㎝)로, 내용은 “기유년(己酉年) 5월 21일 여기서부터 아래로 동쪽을 향해 12리를 물성소형(物省小兄) 배백두(俳百頭)가 지휘감독하여 쌓다.”라는 내용이다. 명문 중의 간지인 ‘기유(己酉)’는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등에 ‘기축(己丑)’으로 수록됨에 따라, 그 동안 김정희가 발견한 기축년명 성석과 함께 장수왕 37년(449) 또는 평원왕 11년(569)으로 추정되어왔다. 그러나 원석이나 고탁본을 보면 ‘기유’임이 분명하므로 장수왕 57년(469)이나 평원왕 31년(589)에 해당된다고 본다.
    글씨는 남북조시대의 해서 계통으로 힘찬 방필(方筆)의 경향이 보인다. 당시 공사를 맡은 관리의 사무적 기록이므로 자연스런 필치가 살아 있는데, 청나라의 강유위(康有爲)는 『광예주쌍즙(廣藝舟雙楫)』에서 이 글씨의 서품(書品)을 고품하(高品下)에 열거하면서 높게 평가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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