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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운룡(南雲龍)

연극인물

 해방 이후 남사당놀이 중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꼭두각시놀음」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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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해방 이후 남사당놀이 중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꼭두각시놀음」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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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1907∼1978. 본명은 남형우(南亨祐).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나 뒤에 경기도 양평군과 서울에서 살았다. 14세 때부터 오명선행중(吳明善行衆)·안성복만이패·이운선행중(李雲仙行衆) 등을 따라다녔다.
조운서(曺雲瑞)로부터 꼭두각시놀음을 배웠고, 18세 때에는 최근선(崔根善)에게서 꼭두각시놀음을 배웠으며, 1934년부터 마지막 남사당패인 안성놀이패를 조직하여 전국을 유랑하였다.
꼭두각시놀음·상쇠·대잡이·탈놀이에 두루 뛰어났으며, 꼭두각시인형제작 및 탈 제작 기능도 지녀 1964년 12월 중요무형문화재인 꼭두각시놀음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61년 제작한 덧뵈기탈은 문화재관리국 한국민속관에 보존되어 있으며, 민속극회 남사당의 이사장도 역임하여 남사당놀이를 오늘에 전하는 데 중추적 구실을 하였다.
후계자로 그의 처 박계순(朴桂順), 박용태(朴龍泰), 아들 기환(基煥)과 기문(基文) 등 많은 제자를 길러내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無形文化財調査報告書)1-꼭두각시놀음-』 (문화재관리국,1964)

  • 한국의 가면극  (이두현, 한국가면극연구회, 1964)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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