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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팔(金永八)

연극인물

 일제강점기 「미쳐가는 처녀」, 「싸움」, 「그 후의 대학생」 등의 작품을 제작한 연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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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일제강점기 「미쳐가는 처녀」, 「싸움」, 「그 후의 대학생」 등의 작품을 제작한 연극인.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좌경색채를 띤 희곡과 소설을 발표한 작가이다. 1920년 동경유학생들의 연극서클인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의 창립동인이다. 1923년 형설회순회극단(螢雪會巡廻劇團)의 일원으로서 전국을 누비며 학생배우로도 활약하였다. 개성에 본거지를 둔 송경학우회(松京學友會) 연극에 찬조출연도 했다.
형설회가 해산된 후 1925년에는 김영보(金泳俌)·안석주(安碩柱)·고한승(高漢承) 등과 연극연구단체 극문회(劇文會)를 조직했으나 무산되었다. 신문학사상 최초의 프롤레타리아문화단체인 염군사(焰群社)의 창립동인이 되었고 카프조직의 창립회원으로도 활약했으나, 1930년대초에는 경성방송국에 취직했다는 이유로 카프로부터 제명당하였다.
1924년 가을에 「미쳐가는 처녀」라는 단막극으로 처음 등단했고, 그가 주로 활동한 1930년대초까지 희곡 10여 편과 소설 10여 편을 남겼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하기는 했으나 프로 문학의 맹장은 못 되었고, 다만 프로 문예시대에 있어서 시류를 좇아 좌경했던 작가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근대희곡사의 두 흐름이라 볼 수 있는 전통적 인습의 질곡으로부터의 해방과 식민지 압제로부터의 해방으로 연결된다. 그러한 사회의식은 그 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초점을 맞추었던 빈궁문제나 사회개혁의 문제와 직결된다.
전통인습에 대한 비판을 다룬 작품이 「미쳐가는 처녀」·「여성」 등이며, 존재의 고통을 저항적으로 묘사한 작품이 「싸움」·「부음」·「곱장의 칼」·「마작」 등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처지에서 인습타파와 생존권 확보를 주장하는 저항적 희곡의 첫번째 작품이 「싸움」이며, 1927년에 발표한 「부음」부터는 이데올로기 작품의 한 전형을 만들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즉, 주인공을 가난한 하급노동자로, 또는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격렬한 투사로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카프로부터 제명당한 뒤부터는 작품도 세태극으로 변모하여 「그 후의 대학생」·「우는 아내와 웃는 남편」을 발표하였다. 「그 후의 대학생」은 우리 희곡사상 최초의 모노드라마이다.
10여 년 동안 프롤레타리아극의 선구로 활약하다가 곧바로 전향한 최초의 극작가로서, 식민지 질곡으로부터의 해방을 경향극(傾向劇)으로 표현하려 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유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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