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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사소조삼세불(甲寺塑造三世佛)

조각문화재 | 유적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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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명갑사소조삼세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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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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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5호. 갑사 소조삼세불은 삼불좌상 사이에 각각 보살입상 4구가 협시하는 칠존형식의 불상이다. 삼불상은 공간적 개념의 삼세불로, 본존 사바세계 석가불, 좌존 유리광세계 약사불, 우존 극락세계 아미타불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간적 개념의 삼세불은 존명이 밝혀진 1641년(인조 19)에 조성된 순천 송광사 대웅전의 소조삼세불상과 비교할 수 있다. 네 보살상은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보현보살·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로 보기도 하며, 문수보살·보현보살·제화갈라보살·미륵보살로 추정되기도 한다.
이 불상은 나무로 기본적인 틀을 갖추고 진흙을 발라 조형한 후, 금을 입혀 조성하였는데, 이는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소조불상의 전통적인 방식이다. 소조는 인도에서 불상이 출현했던 시기부터 조성된 방식으로, 고대 서역과 중국에서 널리 유행하였다. 경제적인 재료이기 때문에 소형에서 대형에 이르기까지 불상 조성에 많이 이용되었고 특히 장육불상과 같은 대형의 불상을 조성하는 데 널리 애용되어 왔다. 갑사 소조삼세불은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소조불좌상을 비롯하여 조선 전기에 조성된 경주 기림사 소조삼신불좌상 등의 대형 소조불상의 전통을 이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불상이 조성된 시기는 1592년(선조 25)부터 7년간 지속된 조선 최대의 전쟁인 임진왜란 직후로 추정된다. 갑사는 정유재란으로 완전 소실되었는데, 사찰의 대규모 복구사업이 진행될 때 갑사 불상도 갑사의 복구불사의 일환을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갑사는 1604년(선조 37) 현재 대웅전을 비롯하여 진해당 등이 중건되기 시작하여 1650년(효종 1)에 괘불을 조성하고, 1654년경에 가람을 일신하였다. 더욱이 갑사는 임진왜란 때 혁혁한 공을 세우고 전장에서 입적한 영규대사(靈圭大師)의 정신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사찰이었다. 현재 갑사에는 영규대사의 사적비와 진영이 보관된 표충원(表忠院)이 일곽을 이루고 있다. 강직하고 장대한 갑사 불상은 그러한 정신에서 발현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불사보살 형식으로 현존하는 불상은 1639년(인조 17)에 조성된 하동 쌍계사 대웅전 목조삼세칠존불상과 1703년(숙종 29)으로 추정되는 구례 화엄사 각황전 목조삼세칠존불상 등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 갑사 소조삼세불은 현존하는 삼세칠존불상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불상으로, 갑사 대웅전 내 대형의 방형 수미단 위에 병렬로 봉안되어 있는데 대웅전 규모가 작은 듯하지만 대형의 삼세불화, 수미단과 더불어 비교적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칠존상은 모두 소조로 조성되었는데, 현재 본존불상의 왼쪽 허리 뒤편에 소조를 덮었던 면이 드러나 있어 조성기법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내부에 여러 개의 나무로 틀을 갖추고 2~4㎝ 정도 두께의 진흙을 발라 그 위에 금을 입혀 조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삼불상은 모두 통견 형식의 불의(佛衣)를 입고 있지만 본존은 편단우견에 왼쪽어깨를 살짝 덮고 있어 좌우보처상과 격을 달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건장하고 강직한 인상을 풍기지만 세부적으로 양감이 없고 평판적이고 네모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수인(手印)은 삼불상이 모두 각각 다르게 표현되었다. 본존은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는데 선정인의 왼손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좌존은 왼손을 들고 오른손을 다리 부분에 놓았으며, 우존은 본존을 중심으로 좌존과 대칭적으로 표현되었다. 우존의 수인은 아미타하품중생인으로 추정된다. 나무로 조성된 대좌는 조선시대 유행한 대좌 형식으로 앙련(仰蓮)과 복련(伏蓮)이 맞대어 있는 하트형의 대좌와 그것을 받치고 있는 팔각형의 대좌받침으로 구성되었다.
보살상은 일반적인 보살의(菩薩衣)를 입지 않고 불상과 동일한 불의 형식의 옷을 입고 있다. 이는 고려 초 부여 대조사 보살입상에서부터 나타나 조선시대에 일반화된 것으로 보인다. 보살상은 상투를 틀어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흘러내리고 보관을 쓰고 있으며, 지물을 들고 있다. 수인은 본존불상을 중심으로 각각 2구씩 대칭적으로 시무외·여원인의 변형으로 판단되는 설법인을 취하고 있다. 보살상의 대좌는 불상의 대좌와 동일한 나무로 조성되었지만, 불상대좌와 다르게 앙련좌(仰蓮座)에 그것을 받치는 받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불상은 대형 불단 위에 병렬하여 후불화와 더불어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내 예배자를 압도하는 구성력을 보여준다. 본존상이 보처불에 비하여 우위에 있으며 본존을 중심으로 엄격한 대칭구도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삼불은 좌상으로 구성하고 사보살상은 입상으로 구성하여 짜임새와 율동감 있는 배치구성을 보이고 있다. 신체는 하체에 비하여 상체를 크게 조성하여 전체적으로 장대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는 예배자의 시점을 고려한 비례체계로 파악된다. 높은 불단에 봉안되어 있어 예배자의 시점과 가장 가까운 하체는 작고 예배자의 시점과 먼 상체는 크게 조형하였다. 비인체적인 비례를 채택함으로써 세장한 이등변삼각형 구도를 나타내고 있다.
형태미는 전체적으로 방형을 나타내면서 평판적이고 경직되어 있다. 얼굴은 경직되어 있지만 강직한 인상을 주고 체구는 장대하면서도 경직된 형태미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선미는 강직하고 역동적이지만 경직되어 있어 장대하고 경직된 형태미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직선적이고 경직된 선은 강한 층단을 두어 장대한 불상양식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17세기 전반기에 유행하여 17세기 후반기 이후로 점차 간략하게 변화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특징
이 불상은 조선 전기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으면서도 조선 후기를 시작하는 새로운 양식 경향이 혼재하고 있다. 허리가 세장한 신체 비례, 한번 접힌 오른쪽 어깨의 옷자락, 왼쪽 가슴 위에 반전된 옷자락, Ω자형 옷주름 등의 특징은 1458년(세조 4)에 조성된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불좌상, 1482년(성종 13)에 조성된 경주 천주사 목조불좌상 등과 같이 조선 전기적인 요소가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평판적이고 경직된 신체, 원통형의 장방형의 얼굴, 크고 투박한 입과 넓은 인중, 구부러진 약지, 옆으로 돌아가 형식화된 Ω자형 옷주름, 어깨와 다리의 2~3단 직선적인 옷주름선 등에서는 1614년(광해군 6)에 조성된 익산 숭림사 목조석가불좌상을 비롯하여 1633년(인조 11)에 조성된 고창 선운사 대웅보전 소조삼신불상, 1641년에 조성된 순천 송광사 대웅전 소조삼세불상 등과 같이 17세기 전반기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갑사상의 본존상은 1614년에 조성된 숭림사상과 세부적인 면까지 동일한 점이 매우 많다. 아마도 동일한 유파에 의해서 조성되었다고 보이며, 그래서 갑사 불상은 숭림사상이 조성된 17세기 1/4분기로 편년할 수 있을 것이다. 문헌자료에서도 대략 17세기 전반기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와 1659년(효종 10)에 지은 「공주갑사사적비」에 의하면 정유재란으로 갑사가 완전히 소실되어 1604년에 대웅전과 진해당을 중건하였고 1654년에 가람을 일신했다고 전한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이 불상 조성의 의의는 첫째,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소조장육불상의 조상 전통에 따라 조성되었으며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소조불좌상, 16세기로 추정되는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 소조삼신불좌상의 계보를 잇는 불상이라는 점이다. 둘째, 갑사의 중심 신앙을 대변하는 불상으로 임진왜란 때 전장에서 입적한 승병장 영규대사의 애국정신과 임진왜란 이후 대규모 복구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것으로 불교사적 의미를 갖는다. 셋째,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삼세칠존불 형식으로 조선시대 조각사적 의의와 불교신앙적 측면을 살펴볼 수 있다. 넷째, 조선시대 조각사에 있어서 조선 전기 양식을 따르면서도 조선 후기를 시작하는 양식으로 조각사 편년에 있어 중요한 불상이다. 다섯째, 임진왜란 이후 소조대형불상의 유행을 선도하는 불상으로 그 의의가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갑사 대웅전 소조삼세칠존불상 연구」(심주완,『불교문화연구』2,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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