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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마라톤대회(東亞─大會)

      체육의식행사

       동아일보사에서 주최하여 매년 개최하는 마라톤 경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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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동아마라톤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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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마라톤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동아일보사에서 주최하여 매년 개최하는 마라톤 경기대회.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1931년 서울에서 열린 제1회 경성∼영등포 마라톤대회(京永대회)를 모태로 한 동아마라톤은 2000년 현재 제71회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대회이다.
      일제강점기에 마라톤으로 일본인의 기를 꺾고 민족혼을 일깨우고자 창설된 동아마라톤은 태동부터 민족스포츠인 한국 마라톤의 역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1964년 이후 수립된 19차례의 한국 최고기록 중에서 10차례가 이 대회에서 기록됐고 손기정·황영조·이봉주 등 한국마라톤의 스타들이 발자취를 남겼다.
      1931년 3월21일 정오 서울∼영등포간을 왕복하는 23.2㎞ 구간으로 동아마라톤은 시작되었다. 동아일보는 역사적인 첫 대회를 ‘제1회 마라톤경주대회’로 지면을 통해 크게 보도했다.
      고려육상경기회 주최, 동아일보·조선체육회 공동후원으로 열린 첫 레이스는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을 출발해 태평통→남대문→한강인도교→노량진→영등포역전을 거쳐 같은 길로 돌아오는 코스로 열렸다. 14명이 참가한 가운데 영광의 첫 우승은 양정고의 김은배(金恩培)가 1시간 22분 05초의 기록으로 차지하였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의 영웅 손기정(孫基禎)은 20세의 ‘신예’로 제2회 대회에 첫 출전했다. 1시간 21분 54초로 우승한 경성의 변용환(총독부)에 이어 1시간 25분 25초로 2위에 올랐다.
      양정고보에 스카우트된 손기정은 다음해 제3회 대회에서 첫 정상에 올랐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2시간 29분 19초의 기록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손기정의 쾌거에 따른 기쁨도 잠시,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발생한 총독부의 무기정간처분으로 동아대회는 1937년 봄 제7회 대회와 가을 제8회 대회가 중단되는 비운을 겪었다.
      불운은 끊이질 않았다. 1938년 제8회 대회로 재개된 이후 총독부의 통제로 주최자인 고려육상경기회가 해체되자 1939년 제10회 대회부터 동아일보사가 직접 인수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일제의 탄압은 극에 달해 1940년 제11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동아일보 정간 등으로 동아마라톤은 14년 동안의 긴 공백기에 들어갔다.
      해방과 전란의 소용돌이를 겪은 동아마라톤은 1954년에 이르러 1947년(서윤복)과 1950년(함기용) 보스톤마라톤 제패를 기념한 경영(京永)간 단축마라톤으로 부활됐다. 임종우(신흥대)가 1954년과 1955년에 걸쳐 제25회와 제26회 대회를 제패해 대회 첫 2연속 우승자로 이름을 남겼다.
      동아마라톤이 본궤도에 오른 것은 1964년 제35회 대회부터다. 단축경주에서 국제대회와 같은 풀코스대회(42.195㎞)로 처음 열렸고 명칭을 동아마라톤대회로 바꾼 것도 이 대회부터다.
      1964년 도쿄올림픽 파견후보선발전을 겸한 동아마라톤은 광화문을 출발해 경인가도에서 펼쳐졌다. 노장 이창훈(한전)이 2시간 27분 13초 8의 기록으로 우승테이프를 끊었다. 1965년 제36회 대회에서 대회사상 첫 한국최고기록이 작성됐다. 주인공은 2시간 21분 21초 6의 한국기록을 세운 18세의 이명정(단국공고)이다.
      동아마라톤에서의 한국기록 행진을 계속됐다. 1966년 제37회 대회에서는 김복래(석탄공사)가 2시간 19분 07초의 기록으로 당시 ‘숙원의 20분 벽’을 돌파했다. 처음으로 외국선수를 초청해 국제대회로 발돋움한 1970년 제41회 대회에서는 김차환(한전)이 2시간 17분 34초 4의 한국최고기록으로 우승했다.
      ‘마의 15분 벽’에 막혀 지지부진했던 한국기록도 동아마라톤에서 깨졌다. 1984년 제55회 대회에서 이홍렬(경희대)은 2시간 14분 59초의 한국최고기록과 함께 1981년 제52회 대회에 이어 두번째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1987년 제58회 대회에서는 1∼3위까지 12분대에 진입하는 호기록을 남겼고, 1990년 제61회 대회에서는 마라톤 풀코스에 첫 도전한 김완기(코오롱)가 한국기록을 3년 만에 47초 앞당기며 12분벽을 넘어섰다. 기록은 2시간 11분 34초였다.
      공식상금제를 도입해 기록단축을 독려하기 시작한 1992년 제63회 대회에서는 국내 첫 9분대 진입이라는 열매를 거뒀다. 김재룡과 김완기는 각각 2시간 9분 30초와 31초의 1초차 승부로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1996년 제67회 대회에서 이봉주를 1초차로 따돌리고 우승한 마틴 피즈(스페인)는 2시간 08분 25초로 역대대회 최고기록을 남겼다.
      여성마라토너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은 1979년 제50회 대회부터였다. 신설된 여자부 10㎞ 경기에서는 문기숙이 우승했고 1983년 제54회 대회에서 처음으로 열린 여자부 풀코스에서는 임은주(조폐공사)가 2시간 48분 13초로 초대 챔프에 올랐다.
      1970년 제41회 대회에서 3명의 외국선수를 초청해 국제대회로 발전한 동아마라톤은 1982년 제53회 대회에서 21개 국 선수가 출전해 국제대회로서 면모를 갖춘데 이어 마스터스 부문을 신설하고 국제규모로 대회를 승격, 세계 유수의 마라톤 이벤트로 발돋움했다. 1994년 제65회 대회부터 국제마라톤대회 겸 동아마라톤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9년 만에 서울에서 열린 2000 동아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1회 동아마라톤대회는 마스터스 부문에만 8,500여 명이 참가, 마라톤 강국의 힘을 안팎으로 과시하는 축제의 한마당으로서 단단히 자리매김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00년)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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