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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경기대회(東─競技大會)

    체육의식행사

     1993년부터 동아시아 국가 간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창설된 경기대회.   국제종합경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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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동아시아경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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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부터 동아시아 국가 간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창설된 경기대회.국제종합경기대회.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제1회 대회는 중국의 상해(上海)에서 개최되었는데, 우리 나라는 임원 64명, 선수 202명을 참가시켜 종합전적 3위를 하였다. 그리고 제2회 대회는 우리 나라 부산에서 개최되었는데, 임원 80명, 선수 296명을 참가시켜 종합전적 3위를 하였다.
    제1회 동아시아경기대회는 중국의 상해에서 1993년 5월 10일부터 18일까지 9일간 열렸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개방화의 물결 속에 중국의 어느 도시보다 서구화된 국제도시 상해에서 우의와 단결을 슬로건으로 개최된 이 대회는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주최국인 중국과 일본·북한·대만 등 9개국 2,008명의 선수단이 출전하여 선의의 경쟁을 벌였다.
    축구·육상·수영 등 12개 종목 168개 세부종목으로 치러진 이 대회는 스포츠 강국인 중국·한국·일본·북한 등이 모두 참가해 아시아지역의 스포츠 판도를 예측할 수 있었고 1994년 10월 히로시마(廣島)에서 열리는 제12회 아시안경기대회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어 각별한 관심을 갖는 대회였다.
    제1회 대회는 시종 중국의 독주로 이어졌으며 우리 나라와 일본의 2, 3위 쟁탈전이 흥미를 불어넣었다. 다른 종합대회와는 달리 종목별로 선수숙소가 분리되어 선수들을 보조하는 임원들의 발걸음이 유난히 분주하였고, 이념을 초월하여 중국·대만, 한국·북한의 만남의 장을 마련한 것도 이 대회의 특색이었다.
    육상과 수영이 차지하는 메달 빈도가 지나치게 높아 중국의 종합 1위는 이미 기정사실화 되었고 우슈와 조정경기 역시 개최국의 유리함과 더불어 중국의 독주에 일조를 하였다.
    육상경기 종목에서는 남자 22개, 여자 19개로 전체 메달의 25%인 41개의 금메달이 배정되었는데 이 가운데 중국이 무려 29개의 메달을 차지했으며, 우리 나라는 육상에서 금메달 3, 은메달 2, 동메달 2개를 획득하였다.
    남자 100m 경기에서 진선국(陳善國), 남자 800m의 이진일(李鎭一), 1,500m에서 김순형(金順亨)이 각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육상 다음으로 많은 메달이 걸려있는 수영에서는 이미 세계 정상에 올라있는 중국의 강세는 어느 종목보다 심하였다. 다이빙에서 중국은 6개를 모두 손에 넣고 경영에서 25개를 획득하여 무려 31개(84%)의 금메달을 챙기면서 세계 최강을 자랑하였다.
    우리 나라가 수영에서 얻은 총 메달 수는 금메달 2, 은메달 2, 동메달 5개로 18명의 대선수단을 출전시킨 것에 비하면 실적이 저조하였다. 수영에서의 금메달 주인공은 자유형 400m의 방승훈(方勝勳)과 배영200m의 지상준(池相俊)이었다. 올림픽이나 아시아경기대회와는 달리 이 대회에서의 역도는 남자부 10체급만 열렸다.
    우리 나라는 역도에서 금메달 4, 은메달 2, 동메달 1개를 획득했으며, 중국이 4개, 북한이 2개를 얻었다. 우리 나라가 얻은 4개의 금메달은 전병관(全炳寬, 59㎏급)과 염동철(廉東喆, 91㎏급)·정대진(鄭大珍, 108㎏급)·황희동(黃熙棟, 99㎏급)이었다. 1990년 북경아시아경기대회에서 5개 체급을 제패했던 복싱은 상해에서는 약간 저조하였다.
    우리 나라는 이 대회에서 홍성식(洪性湜, 60㎏급)·한형민(韓亨珉, 63㎏급)·김장섭(金長燮, 71㎏급)·이승배(李承倍, 75㎏급) 등이 우승을 차지했으며 48㎏급의 이광호(李光浩)와 67㎏급의 박준호(朴浚澔)는 은메달에 머물렀다. 그러나 우리 나라 선수 전원이 4강에 들어 모두가 메달을 획득한 종목이 되었다.
    상해대회에서 유도에 걸린 금메달은 남자 8개, 여자 8개였는데 이 중 우리 나라는 남자부에서 임병기(林柄基, 60㎏급)·김건수(金建秀, 95㎏급)·이준녕(李俊寧, 95㎏급)·전기영(全己盈, 78㎏급) 등 4명이 정상에 올랐고 여자부의 경우에도 김미정(金美廷, 72㎏급)·조민선(曺敏仙, 66㎏급)·정선용(鄭善溶, 56㎏급)이 우승하여 총 7개의 메달을 획득하면서 중국과 일본을 제쳤다.
    중국의 고유 무술인 우슈는 개최국인 중국의 입김에 의해 채택된 전략종목으로 6개의 금메달 모두를 중국이 독차지하였다.
    한국·북한·중국·일본·몽골·마카오 등 6개국이 출전하여 풀리그로 경기를 치른 축구는 한국축구의 실력을 유감없이 과시하여 북한에 무승부를 기록한 것 외에 모든 경기에서 승리하여 4승1무로 우승했으며 2위에는 북한이 올랐다.
    우리 나라와 중국이 남·녀 모두 결승에서 맞붙은 농구경기에서는 우리 나라 선수들이 중국의 만리장성을 넘지 못하고 2위에 머물렀다. 배드민턴에서는 남·녀 단체전과 단식, 복식 등 6개의 금메달 중 우리 나라는 여자복식에서 1개의 금메달을 땄으며 나머지 5개는 중국의 품으로 돌아갔다.
    즉 우리 나라는 손희주(孫希朱)·김신영(金信英)의 여자복식조가 금메달을 차지했고, 남자단식의 이광진과 여자단체팀이 은메달, 여자단식의 김지현과 남자복식조 및 혼합복식조가 동메달을 차지했다. 체조에 걸려있는 금메달 수는 남자 8개, 여자 6개로 비중이 높은 종목이다.
    대회전 예상대로 체조경기는 남자의 경우 여홍철(呂洪喆)이 도마에서 금을 따내는 등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획득했으나 여자의 경우 김윤지(金胤志)가 뜀틀에서 동메달을 하나 획득하는 데 그쳤다. 중국은 10개 종목에서 우승, 체조 강국의 면모를 과시하였다.
    조정에 배정된 14개의 메달 중 중국은 10개의 메달을 획득했으며 일본이 남자 무타포어, 남자 경량급 무타포어 2종목에서 우승하여 체면을 세웠고 북한이 남자 경량급 싱글스컬에서, 홍콩이 여자 경량급 싱글스컬에서 정상에 올랐다. 우리 나라는 남자 싱글스컬과 무타페어에서 은메달 2개를, 남자 무타포어와 에이트에서 동메달 2개를 따내는 데 그쳤다.
    대회 결과 168개의 금메달 중 중국은 62%인 105개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스포츠 선진국의 실력을 보여주었으며, 우리 나라는 일본에 금메달 2개 차로 3위에 머물렀다. 이 대회에서는 육상에서 1개, 수영에서 2개, 역도에서 11개, 총 14개의 아시아 신기록이 수립되었다.
    제1회 상해동아시아경기대회에 이어 1995년 평양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제2회 대회가 북한의 반납으로 1994년 10월에 이르러 개최 장소가 부산으로 바뀌었다.
    갑작스런 반납으로 인한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함께 여는 평화제전, 하나되는 동아시안(Peace, Unity, New East Asian)”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제2회 동아시아경기대회가 1997년 5월 10일부터 19일까지 10일간 항구도시 부산에서 개최되었다.
    동아시아경기대회협의회(EAGA) 회원국 중 9개 국 1,800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가운데 육상·태권도·역도 등 13개 정식종목과 시범종목인 볼링경기가 실시된 이 대회는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조직적인 대회운영이 돋보인 동아시아인의 축제였다.
    경기대회 직전인 5월 6일부터 8일까지 3일간에 걸쳐 롯데호텔 국제회의장에서는 스포츠과학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스포츠발전에 이바지하였다. 개막식 행사는 21세기 환태평양시대의 주역이 될 부산의 역동적 이미지를 부각시킨 내용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사마란치(Samaranch,J.A.) IOC위원장을 비롯한 40여 명의 IOC위원과 국제 스포츠계 인사가 참석하여 우리 나라의 국제 스포츠계 위상을 높여 주었다.
    우리 나라는 이 대회에 임원 80명과 선수 296명, 모두 376명을 참가시켜 금메달 45개, 은메달 38개, 동메달 51개를 획득하였다.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태권도(7), 복싱(4), 유도(6), 레슬링(7) 등의 종목에서 우리 나라 선수단은 다른 국가들의 빠른 성장과 추격을 견제하면서 모두 금 24개를 따내며 선전했으나 종합전적은 3위에 머물렀다. 중국은 금메달 62개, 은메달 59개, 동메달 62개로 1위, 일본은 금메달 47개, 은메달 52개, 동메달 53개로 2위를 차지하였다.
    우리 나라에 우승의 금메달을 안겨준 선수와 종목은 ① 상경기에서는 이진택(높이뛰기)과 김태근(10종경기)이며, ② 배드민턴에서는 남자단체와 복식에 이동수·유용성이었고, 여자단식에는 이주현(李宙炫), 혼합복식에 이동수·임경진, ③ 여자농구, ④ 복싱에 최준욱·최승록·신은철·고영삼, ⑤ 축구, ⑥ 체조에 여홍철(呂洪喆, 마루), ⑦ 유도 남자부에 김혁·곽대성·조인철·김민수, 여자부에 정성숙(鄭成淑)·조민선(曺敏仙) 등이었다.
    동아시아경기대회는 한국을 비롯해 북한, 중국, 일본, 홍콩, 마카오, 대만, 몽골, 괌 등 9개국이 참여했으며, 중국 상하이(1회) 이후 부산(2회), 일본 오사카(3회), 중국 마카오(4회), 홍콩(5회), 중국 톈진(6회) 등에서 개최됐다. 그러나 2013년 텐진에서 개최된 제6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체육』(대한체육회,1993.6.,1997.6.)

    • 제2회 동아시아경기대회 참가보고서  (대한올림픽위원회, 1997)

    • 『’97동아시아스포츠과학학술대회』(’97동아시아경기 스포츠과학학술대회 추진위원회,1997)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8년)
    정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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