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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복(金元福)

현대음악인물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교육자.   피아노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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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교육자.피아노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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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황해도 신천(信川) 출생, 「봉선화」의 작사자인 김형준(金亨俊)의 딸이자, 바이올리니스트 홍성유(洪盛裕)의 부인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김원복은 6세 때인 1924년 피아니스트로 데뷔하였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피아니스트이자 최초의 여류 피아니스트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다. 그녀는 1930년 일본의 구니다치음악대학(國立音樂大學)의 전신인 동경고등음악학원(東京高等音樂學院)을 졸업하였다.
1935년에는 경성중앙보육학교 교수가 되었고, 1938년에는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가 되었다. 1920년대에서 1940년대에 걸쳐 중요 음악회의 피아노 연주는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였으며, 수많은 곡을 초연하였다.
광복 후에는 고려교향악단 피아노 주임을 거쳐 1946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1973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서울대학교의 교수로서 수많은 피아니스트를 양성하였으며, 연주자로서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1957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1963년에는 음악협회 고문, 1981년에는 예술원 원로회원이 되었다. 2002년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연주를 하여 16세에 첫 연주를 한 이래 약 80년간을 연주가로서 활동을 하였다는 대기록을 남겼다.
영역닫기영역열기저서
역서로 『음악가는 말한다』가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상훈과 추모
김원복은 한국의 피아노 역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피아노 연주와 교육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그 공로로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비롯하여, 5월문예상, 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채동선음악상(蔡東鮮音樂賞) 등을 받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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