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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산전투(汶山戰鬪)

    국방사건

     한국전쟁 발발 당일인 1950년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전개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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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문산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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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한국전쟁 발발 당일인 1950년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전개된 전투.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한국전쟁 발발 당시 청담·연백·개성·고랑포·적성 일대에 이르는 38도선 서부전선의 방어는 국군 제1사단이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6월 25일 새벽, 국군 제1사단은 날이 밝기도 전에 개시된 공격준비사격과 함께 월등한 화력과 병력을 동원하여 T-34 전차를 앞세우고 공격해 오는 북한군을 방어하였으나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국군은 이 지역이 바로 수도 서울의 관문이 되는 지역이므로, 방어의 중요성을 절감하여 2개 연대를 급파하였으나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북한군은 개성·문산·파평산·봉일천 일대에서 T-34형 전차 1개 연대와 정규 2개 사단(제1·제6사단)을 동원하여 방어전에 임한 국군을 파죽지세로 밀어붙여 불과 4일 만에 국군의 주력을 무력화시키고 주저항선을 돌파하여 바로 서울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한때 국군은 임진강과 곡룡천이라는 천연장애물을 이용하여 북한군의 진출을 일시 저지했으나, 6월 28일에 서울이 함락되자 퇴로가 차단되어 부득이 행주·이산포 나루에서 한강을 건너 시흥으로 철수하는 등, 철수작전에서도 큰 차질을 빚게 되었다.
    철수시기를 놓친 제1사단은 한강 도하시 장비 부족으로 말미암아 병력이 분산되고, 대부분의 공용화기와 장비를 놓아둔 채 철수하는 등, 병력과 장비 등 모든 면에서 치명적인 손실을 입게 되었다.
    그리하여 국군은 한강이라는 훌륭한 천연적인 장애물을 이용한 방어선을 구축하는데 많은 곤란을 겪었으며, 한편 이 전투의 패배로 한강 이북지역은 거의 북한군 점령지가 되고 말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이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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