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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제간첩사건(金正濟間諜事件)

    국방사건

     경찰관 김정제가 남조선노동당(南朝鮮勞動黨, 약칭 南勞黨) 특수부에 가담하여 북한의 지령에 따라 간첩활동을 하다가 체포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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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김정제간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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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경찰관 김정제가 남조선노동당(南朝鮮勞動黨, 약칭 南勞黨) 특수부에 가담하여 북한의 지령에 따라 간첩활동을 하다가 체포된 사건.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그는 1949년 경찰 인사행정을 담당하는 대한민국 내무부 치안국 경무과장이라는 고위직에 재직하면서 남로당 특수부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투옥되었다가, 6·25전쟁 때 출옥한 후 바로 월북, 밀봉교육을 받고 공작원으로서 그 해 10월 26일 남파되었다.
    그 후 남로당과의 인연을 청산한 것처럼 위장하고 1951년 1·4후퇴 때 부산으로 남하하여 본격적인 공작활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그는 당시의 집권당이던 자유당의 간부들과 교류, 정치·군사·경제 분야의 기밀을 탐지하고 과거 친히 알던 경찰 종사자들을 통하여 대남공작원들이 검거된 상황을 일일이 북한에 보고하는 한편, 북한에서 파송한 공작연락원 한영창(韓永昌)·조돌용(趙突容) 등과 접선, 구체적인 공작 지령을 접수하여 그 결과를 무전으로 보고하였다.
    1953년 10월에는 북한으로부터 공작금 3천 달러를 받은 바 있으며, 1956년 여름 10여 년에 걸친 그의 활동을 평가받아 북한의 초청으로 월북하여 약 1개월간 있으면서 북한 공산정권으로부터 ‘국기훈장 2급’을 받았다.
    그의 위장된 정치권 활동은 야당인 진보당과 민주당의 고위 간부들에게까지 손을 뻗쳤고, 자유당에서는 중앙위원으로 추천받아 국회의원 선거 유세에 찬조 연사로도 활약하였다.
    1957년 8월 체포되었을 당시 그가 간첩활동의 대상으로 삼아 평소 긴밀히 접촉했던 인사는 장관급·국회의원 및 각 정당의 간부 등 고위층 인사가 50여 명에 달하였다. 그의 체포는 간첩 한영창이 남파되어 불심검문을 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경기도 경찰국은 관할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해안으로 침투한 간첩 한영창을 검거하고 의약용 고무 튜브 속에 감추어 온 지령문과 미화 8,000달러를 압수하는 한편, 접선 대상자가 간첩 임주홍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은 수감중에 있던 임주홍을 조사한 결과 배후에 김정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간첩 한영창이 도망갈 수 있도록 풀어 주어 그와 접선하기를 기다려 한영창의 집에서 만나는 것을 모두 검거하였다. 한영창의 집에서는 암호문·무전기·권총 등이 압수되었고, 김경제는 그 해 겨울 사형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백봉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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