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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국방경비대(南朝鮮國防警備隊)

국방단체

 8·15광복 후 미군정하에서 창설되어 대한민국국군의 모체가 되었던 군사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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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
국방경비대
분야
국방
유형
단체
성격
군사조직, 경비대
시대
현대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8·15광복 후 미군정하에서 창설되어 대한민국국군의 모체가 되었던 군사조직.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미군정 당국은 당초 국방경비대의 명칭을 ‘조선경찰예비대’로 명명하였으나, 우리나라측에서는 ‘남조선경비대’라고 호칭하였다.
국방경비대는 당시 주한미국육군사령부의 뱀부(BAMBOO)계획에 의거, 국내치안 유지에 부족한 경찰력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2만 5000명 규모의 병력을 책정하여 남한의 8개 도청소재지에 각각 1개 중대(장교 6명, 사병 225명)씩의 경비부대를 편성하게 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연원 및 변천
통위부(당시 국방부) 산하기구로 하여 1946년 1월 15일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태릉)주 01)에서 1개중대를 창설하고 이를 모체로 1개 연대로 증편한 것을 효시로, 8개 도청소재지에 각각 1개 중대씩을 편성하였으며, 제1연대본부에 남조선국방경비대 총사령부를 설치하고, 이들 부대를 관장하게 하였다.
그 뒤 1946년 6월 15일 조선경비대로 개칭되었으며, 총사령부에는 총참모장 밑에 인사·정보·작전교육·군수국의 일반참모부와 재정처·의무처·법무처·감찰감실·통신과·군감대를 두었다.
이와 아울러 조선경비대 총사령부는 1947년 12월 1일까지의 기간 중, 그 예하에 3개 여단(서울·부산·대전)을 창설하여 해당 지역에 위치한 각 도의 연대들을 통괄하게 하는 한편, 계속하여 6개 연대와 2개 여단을 추가로 창설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기능과 역할
조선경비대는 국가 중요시설(항만·미군부대 등)의 경비임무와 좌익분자들의 폭동진압임무를 수행하였으며, 특히 1948년 4월 3일 제주 4·3사건이 발생하자 제주도에 주둔 중이던 제9연대를 투입하여 6월 14일까지 이를 진압하였다.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자 9월 1일 국군으로 편입되고, 9월 5일 대한민국육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1월 30일「국군조직법」에 의하여 정식으로 대한민국국군으로 편입되었다.
한편, 조선해안경비대는 1946년 6월 15일 「군정법령」 제28호에 의하여 해안 및 도서순찰을 실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조선해안경비대는 1945년 11월 11일 조선해사협회의 건의에 의하여 미군정 당국이 조직하였던 해방병단(海防兵團)이 그 모체가 되었다.
조선해안경비대는 해방병단이 창설되었던 진해지구의 본부시설을 비롯하여 본부 산하의 해군병학교·조함창·해군병원·군악대, 그리고 인천·목포·묵호·군산·부산 등지의 기지사령부를 편입시켜 해안경비임무를 수행하였다.
특히, 해안경비대는 38도선 이남의 해안경비임무와 조선경비대의 작전지역 수송 및 보급임무도 수행하였다. 또한 조함창의 재건과 경비정인 ‘충무공정(300톤 규모)’을 건조하여 경비임무를 수행하였다.
조선해안경비대는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직후인 1948년 9월 1일 국군으로 편입되고, 9월 5일 대한민국해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1월 30일 「국군조직법」에 의하여 정식으로 대한민국국군으로 편입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지금의 육군사관학교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심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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