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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호부대(猛虎部隊)

국방제도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국군 수도사단의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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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에 참전한 국군 수도사단의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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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2월 비둘기부대의 베트남 파병 이후, 월남공화국 정부로부터 2차례에 걸친 전투부대 파병요청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동년 8월 15일 제52회 임시국회 제11차 본회의에 전투부대 파병안을 상정하여 동의를 얻었으며, 수도사단을 제1진으로 선정하여, 동년 10월 12일 여의도에서 결단 및 환송식을 거행함으로써, 건국 이후 최초로 전투부대를 해외에 파병하게 되었다.
파병부대로 지정된 수도사단은 국본 일반명령(육) 제30호(1965.8.28)에 의거 부대편성에 착수하는 한편, 4주간의 교육훈련을 완료하였다. 이어서 동년 9월 15일에는 계획단이, 9월 25일에는 선발대가 출국하고, 10월 16일에는 1개 연대를 결한 본대가 부산항을 출발하여 10월 22일 베트남의 중남부 항구도시인 퀴논(Qui Nhon)에 상륙하였다. 한편 후속부대인 제26연대는 1966년 4월 6일 부산항을 출항하여 동년 4월 16일 퀴논에 상륙함으로써, 수도사단은 완전 편성된 사단편제를 갖추게 되었으며, 본격적인 작전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수도사단은 1965년 11월 15일부로 미 제101공중기갑사단 및 미 제7해병연대로부터 1,200㎢의 전술 책임지역을 인수받고, 거점을 확보하였다. 이어서 동년 10월 29일 풍손마을에서 서전을 장식한 이래 대대 및 연대규모의 작전을 실시해오다가, 1966년 3월에는 고보이 평야지역에서 최초의 사단급 규모의 작전인 ‘맹호5호 작전’을 실시하였다. 수도사단은 이 작전에서 우세한 병력과 화력을 집중 운용하여 포위망을 형성한 후, ‘토끼몰이식 작전’으로 지대 내의 적을 일망타진하였으며, 사단의 전술책임지역을 북으로 200㎢ 확장하는데 성공하여, 고보이 평야지대를 사단의 통제 하에 두게 되었다.
기갑연대 제3대대는 1966년 7월 9일 미군의 ‘폴 리비어(Paul Revere) 작전’을 지원하기 위하여 캄보디아 국경선 부근으로 이동하였으며, 미군의 통제 하에 두코를 비롯한 국경선 부근의 일대 지역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두코 전투에 투입된 적의 병력은 북베트남 정규군 제88연대 제5대대 예하의 400여 명과 공병특공대 등 증원병력 300여 명으로 총 700여 명이었으며, 이들의 전사상자는 5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후 제3대대는 책임지역을 미 제3여단에 인계하고, 원대로 복귀하였다.
이 같은 두코전투를 계기로 연합군측에서는 한국군의 ‘중대전술기지’의 실효성에 대하여 반신반의하던 종전의 태도를 바꾸고, 그 타당성과 효과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미군은 중대급 전술기지의 명칭을 ‘Fire Base’라고 명명하고, 그 전술적 운용에 대한 연구개발에 착수하였다.
맹호6호 작전은 당시의 시점에서 파월 국군의 최장기, 최대규모의 작전으로 최대의 성과를 거둔 작전이었다. 특히 우기에 전개된 산악전이면서, 유난히 많은 동굴을 소탕한 전투였다. 이로써 파월 국군의 작전 기량은 연합군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맹호6호 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됨에 따라 사단은 푸캇 산악지대를 기지로 하여 출몰하던 빈딩 성 베트콩, E-2B 대대와 대소의 무장병력을 일망타진하고 지역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채성률
개정 (2013년)
양영조(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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