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고희경(高羲敬)

외교인물

 조선 말기의 관료·친일반민족행위자.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고희경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 말기의 관료·친일반민족행위자.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제주(濟州). 고영희의 아들. 대한제국기 전문 외교직에서 활동하고 ‘한일병합조약’ 체결에 앞장섰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어린 시절 가정에서 한학을 수학하였고, 1886년 13세에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에 입학하여 영어 등 신식 교육을 받았다. 1891년에는 과거시험에도 응시하여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출사하여 1894년 7월에 외아문 주사, 1896년 1월에 외부 번역관보로 임명되었다. 그해 3월에 군부 주사가 되었다가 5월에 일본공사관 참서관에 임용된 이후 주로 전문 외교직에서 활동하였다.
1898년 6월에는 주차영국공사관 5등 참서관에 임명되었고, 그 후 외부 번역관·법규교정소 구례위원·궁내부 번역관 등을 지냈다. 1904∼5년에는 예식원의 외무과장과 예식과장으로 승진하였다. 영어에 능통하여 고종의 신임을 받았다.
1905년 이토 히로부미가 통감으로 있을 때 조선 왕실과 통감 사이를 중개하여 관계를 밀접하게 하고 통감의 지시를 국왕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 시기 그의 활동에 대해 『대한계년사』는 ‘이토에게 정부의 크고 작은 일들을 밀고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일본측 자료는 ‘이토통감을 잘 보좌하여 그 뜻을 국왕에게 전달하고 반일파 조선 귀족을 설득하여 일한병합을 성사시킨 공이 크다’고 평가하였다.
1904년에는 대동구락부에서 설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대동구락부는 이른바 1904년 제1차 한일협약으로 불리는 ‘외국인 고문 용빙에 관한 협정서’가 체결된 이후 일본 유력자들이 모여 ‘한일 간의 상호 친목도모와 악화된 한일 간의 감정 및 관계를 완화한다’는 명목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1906년 4월에는 예식원 부경으로 승진하고, 같은 해 5월에는 제도국 의정관을 겸임하였다. 또한 1906년 8∼9월에 궁내부의 예식과장과 예식관에 연이어 임명되는 등 1906년간에 특히 여러 관직을 승진 혹은 겸임하였다.
1907년 10월에는 한창수, 엄달환 등과 함께 일본 황태자 봉영위원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왕세자 이은의 강제 일본유학을 성사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왕세자 유학이 결정되자 이윤용, 송병준 등과 함께 그를 배종하였다. 그 뒤 동궁태부 등의 관직을 거쳐 1911년 2월에 이왕직 사무관에 임명되었다. 왕세자 유학시 배종하여 20여년간 왕세자를 수행하며 일본에 거주하다가, 1926년에 내부의 세력다툼에 밀려 이왕직 사무관에서 파면을 당하고 얼마 후 귀국하였다.
1930년에는 친일단체인 수양단 조선연합회 찬조원으로 활동하였다. 중견청년 육성과 사회정화를 표방한 수양단 조선연합회는 식민통치 당국자, 일본인 유력자, 조선인 친일유력자들이 수양을 명목으로 상호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이다. 1934년 2월 27일 지병으로 경성 본가에서 사망하였다. 사망과 동시에 식민통치에 협력하고 귀족 사회의 친일경향을 이끌어낸 공로로 일본 정부로부터 욱일대수장을 받았다.
이 밖에 1907년 3월에는 특파 대사 다나카 궁내대신의 체재에 편의를 지원한 공로를 인정받아 훈2등 서보장을 받았고, 1907년 11월 왕세자 유학 관련 사무에 대한 공로로 훈2등 욱일중광장을 받았다. 또한 1915년과 1928년에 다이쇼 일왕 즉위와 쇼와 일왕 즉위를 기념해서 수여되었던 대례기념장을 받았다.
1916년 1월 15일 부친 고영희가 사망함에 따라 ‘조선귀족령’에 의거하여 작위를 계승하였고, 고영희가 수작할 당시 받았던 은사공채 10만원에 대한 권리를 이어 받았으며, 조선 귀족에 대한 예우 역시 계승하였다. 1920년 4월에는 왕세자 이은과 일본 황녀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 간의 성혼에 기여한 공로로 백작으로 승작하였다.
고희경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2004년 10월 29일 공포된 대통령령 제18571호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7·9·19호에 해당되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IV-1: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452~464)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2004년 공포된 대통령령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04.3.22 공포) 및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2004.10.29 공포)에 의거하여 2005년 5월 31일 설립되었다. 위원회의 주요 업무는 친일반민족행위 조사대상자 선정, 친일반민족행위의 조사, 친일반민족행위 관련 국내외 자료수집 및 분석, 조사대상자의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진상규명보고서 작성 및 발간 등이었다. 2009년 11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를 발간하여 1,00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뒤 해체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고종실록)

  • 매일신보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현대문화사,2009)

  • 대한제국관원이력서  (국사편찬위원회, 1972)

  • 朝鮮紳士名鑑  (日本電報通信社 京城支局, 1911)

  • 朝鮮功勞者銘鑑  (阿部薰 編, 1935)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8년)
박민영
개정 (2017년)
이병례(성균관대, 근대사)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