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강규찬목차버튼
바로가기
내 검색어

    강규찬(姜奎燦)

    개신교인물

     목사.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강규찬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평안북도 선천 출신. 예수교장로회 선교부가 경영하는 선천 신성중학교(信聖中學校)에서 봉직하면서, 민족정신을 함양하는 교육자로 활동하였다.
    그때 백낙준(白樂濬)·박형룡(朴亨龍)·정석해(鄭錫海) 등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이승훈·양전백 등과 함께 투옥,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출감 뒤 복직되기는 하였으나, 일본경찰의 심한 감시 때문에 1914년 사임하고, 선천북교회 전도사로 일했다.
    1917년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산정현교회(山亭峴敎會) 목사가 되어 1936년까지 일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평양일대의 거사를 위해 주도적 구실을 하였으며, 숭덕학교 교정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격려연설을 하여 일본경찰에 체포, 다시 2년간 복역하였다.
    그 뒤 선천 봉동교회 등에서 일하다가 1945년 4월에 별세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한국기독교수난사(韓國基督敎受難史)』 ( 김광수 ,기독교문사,1978)

    • 『한국기독교사연구(韓國基督敎史硏究)』 ( 김양선 ,기독교문사,1971)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김광수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