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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金昌植)

    개신교인물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영변지방 감리사, 평양지방 감리사 등을 역임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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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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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영변지방 감리사, 평양지방 감리사 등을 역임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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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황해도 수안 출신. 16세까지 한문공부를 하였고 29세까지는 농사와 행상을 하였다.
    당시 서양인들이 조선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야만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선교사 오링거의 집에서 같이 생활을 하는 가운데 그들로부터 오히려 감화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그 뒤 오링거와 아펜젤러에게서 마태복음을 비롯한 4복음을 배웠으며, 오링거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1891년에 오링거가 출국하자 이듬해 8월에 선교사 홀과 함께 평양지방에 파송되어 순회전도를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32년에 걸친 목회의 시작이었다. 평양에서의 선교활동이 처음에는 순조롭게 진행되다가 1894년에 청일전쟁으로 그곳이 전쟁터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평양을 떠나지 않고 평양 사람들을 돌보며 선교에 힘써 몇 곳에 교회도 세웠다. 그 중의 하나가 평양제일교회(후의 남산현교회)였다. 이 때 평양감옥에 투옥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는 등 핍박을 받기도 하였다.
    1893년부터 전도사훈련과 시험을 받아오다가 1901년 5월에 상동교회에서 개최된 감리교연회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 뒤 삼화교회·평양제일교회와 신계·연안·운산·덕천·양덕·맹산·영면·회천·원산·제천지방으로 다니며 순회전도에 진력하였다.
    이렇게 전국을 누비며 각처에 48개 교회를 세웠고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를 ‘한국의 사도바울’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지방감리사로 임명되어, 1904년부터 1910년까지 평안북도 영변지방 감리사로, 1912년에는 평양지방 감리사로 시무하다가 1924년에 은퇴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승리의 생활」 ( 노불부인 ,『조선기독교장운사』,1924)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송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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