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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산리석장승(駕山里石─)

    민간신앙문화재 | 유적

     경상남도 사천시 축동면 가산리에 있는 석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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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가산리석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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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경상남도 사천시 축동면 가산리에 있는 석장승.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3호. 조선시대 수로연변(水路沿邊)의 조창(漕倉)과 해운(海運)을 수호하고 역병(疫病)의 퇴치를 위하여 마을의 여러 곳에 석장승을 세워놓은 것으로 보인다.
    화강석을 조각한 높이 1.2m, 너비 50㎝, 두께 30㎝의 석장승 2개와 높이 80㎝, 너비 30㎝, 두께 20㎝의 석장승 6개 등 모두 8개가 마을 입구와 제장(祭場)에 서 있다.
    형태는 관복을 입고 손에 홀(笏)을 쥐었으며 남장승은 관모 같은 사모(紗帽)를 쓰고, 여장승은 머리 위쪽에 뿔 같은 모양이 있는 등 능묘(陵墓)의 무인·문인석과 비슷한 모습으로, 한 곳에 남녀 2쌍씩을 세웠다.
    이 곳 주민들에 따르면 조선시대 경상남도 서부지역 7개 군현의 공물(貢物)을 모두 가산창(駕山倉)에 모아 해로를 통하여 중앙으로 보냈다고 한다.
    이 때 이곳에 있던 조당(租堂)에 현감들이 모여 공물이 중앙에 무사히 안착하기를 비는 제사를 올리고 조창을 수호하기 위하여 이들 석장승을 세웠다고 전한다.
    요즈음 석장승에 지내는 제사는 동제 성격으로, 1년에 한 번 음력 1월 1일 새벽 1시에 지낸다. 제관은 동민이 윤번제로 하나 흉(凶)이나 상(喪)을 당한 자는 제외한다.
    제물은 돼지머리·고사리·콩나물·단술 등인데, 제사가 끝난 뒤 돼지머리는 땅에 묻고 제사 하루 뒤 오광대놀이를 한다. 제사의 비용은 동네 계에서 조달한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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