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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산해인사결계량기(伽倻山海印寺結界場記)

    불교작품

     898년(효공왕 2) 신라 말의 학자 최치원(崔致遠)이 해인사의 사역(寺域)을 확정한 전후 사실을 기록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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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불교
    유형
    작품
    성격
    사적기
    창작년도
    898년
    작가
    최치원
    시대
    고대-남북국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898년(효공왕 2) 신라 말의 학자 최치원(崔致遠)이 해인사의 사역(寺域)을 확정한 전후 사실을 기록한 글.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해인사는 802년(애자왕 3)에 순응(順應)이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는 그 규모가 작았다. 약 100년이 지난 897년 가을에 다시 중창할 것을 합의하고 90일 동안 참선한 뒤 3층의 집을 짓고 4층의 누를 올려 사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이에 최치원은 898년 정월에 기문을 써서 그 연유를 밝히고, 해인사를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좋은 명당에 우뚝 솟은 옥 같은 사찰이라고 한 뒤, 마음을 깨끗이 하고 계(戒)로써 걱정을 방지하여 잡귀의 방해를 피해야 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이 도량기는 신라 말의 불교사 및 해인사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동문선(東文選)

    • 「신라하대의 해인사와 화엄사」(최원식,『한국사연구』49,1985)

    • 「신라 화엄학승의 계보와 그 활동」(김상현,『신라문화』1,1984)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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