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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민(覺敏)

불교인물

 조선후기 정관문파로 『해의』를 저술한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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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
송파(松坡)
분야
불교
유형
인물
성격
승려
성별
출생일
1596년
사망일
1675년
저작
해의
시대
조선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후기 정관문파로 『해의』를 저술한 승려.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정관문파(靜觀門派)의 선승(禪僧)이다. 성은 노씨(盧氏). 호는 송파(松坡). 충청북도 충주 출신.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어린 시절 충청도안찰사가 그를 사랑하여 데리고 가서 영(營)에서 머물게 하였다. 몇 년 후 늙은 어머니를 뵙기 위하여 집에 돌아갔다가 출가하여 치악산 각림사(覺林寺)에 있던 유정(惟政)의 제자 한한(寒漢)을 은사로 삼아 득도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활동사항
그 뒤 가야산에서 불경과 불교 이외의 서적을 탐구하였고, 태능(太能)의 문하에서 수도하였으며, 이어 비슬산(琵瑟山)의 호구(虎丘)에게서 경전을 배웠다. 그 뒤 각성(覺性)과 태호(太浩)를 만나 마음속에 품었던 의심을 물었고, 충언(冲彦)을 찾아가 7년 동안 유불도(儒佛道) 3교의 깊은 뜻을 강구하여 『해의(解疑)』라는 저술을 남겼다.
1643년(인조 21)금강산에서 응상(應祥)의 지도를 받아 도를 깨달았다. 이때부터 도명(道名)이 높아졌고, 특히 3교에 능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지도하였다.
이후 10여년을 소백산 용문사(龍門寺)와 해인사 등지를 내왕하다가 입적하였다. 법맥은 휴정(休靜)-일선(一禪)-충언으로 이어진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김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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