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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양산파(曦陽山派)

불교단체

 고려 초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희양산 봉암사(鳳巖寺)에서 성립된 종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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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봉암사
분야
불교
유형
단체
성격
종파
설립시기
고려 초
시대
고려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고려 초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희양산 봉암사(鳳巖寺)에서 성립된 종파.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선종 9산문의 하나. 935년(태조 18) 정진국사(靜眞國師) 긍양(兢讓)이 선풍을 선양하여 세웠으며 희양산선문 또는 희양산선파라고도 한다. 긍양이 희양산에 들어가 봉암사를 일으켜 문풍(門風)을 선양함으로써 희양산파가 이루어졌던 것이므로 그가 희양산의 개산조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종래에는 그렇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
『선문조사예참의문 禪門祖師禮懺儀文』 등에 의하면 ‘희양산조사 산신현청도헌국사(曦陽山祖師山神現請道憲國師)’라고 하였으므로 모든 학자들이 그대로 답습하여 도헌, 즉 지증국사(智證國師)를 희양산의 조사 및 개산조로 보아왔다. 그러나 그의 행적을 기록한 지증대사비에 의하면 그가 긍양보다도 먼저 봉암사를 세우기는 하였으나, 희양산파의 조사로 볼 수는 없다.
도헌은 법명이 지선(智詵)이며 시호가 지증이다. 그는 일찍이 출가하여 혜은(慧隱)으로부터 선(禪)을 배워 그 법을 이었는데, 혜은은 준범(遵範)으로부터, 준범은 신행(愼行, 神行)으로부터, 신행은 법랑(法朗)으로부터 법을 이었으며, 신라의 법랑은 중국 선종의 제4조 도신(道信)으로부터 법을 받았던 것이다. 신라 최초의 선법 전래자로 되어 있는 법랑의 제자인 신행은 중국으로 들어가 다시 북점선(北漸禪)의 신수(神秀) 계통인 지공(志空)으로부터 법을 받아왔다.
그러므로 도헌은 도신의 법을 받은 법랑과 북종 계통인 지공의 두 스승으로부터 선법을 받아 전한 신라 신행의 증법손이 된다. 도헌은 현계산(賢溪山)안락사(安樂寺)에서 교화를 펴다가, 나중에 어느 신도의 청으로 희양산에 새로 지은 절로 가서 봉암사라 이름하고 머물렀으나 다시 현계산 안락사로 가서 생을 마쳤다.
이와 같은 그의 비문에 의하면 그는 봉암사에 머물렀기는 하나 극히 일시적이었고, 희양산선파를 성립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의 법손이 되는 긍양의 비(靜眞大師碑)에 의하면, 희양산의 개산조가 긍양이며, 그 법계는 도헌의 비문에 있는 북종선 계통을 따르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긍양이 국왕으로부터 받은 존호는 봉종(奉宗大師)과 증공(證空大師)의 둘이며, 시호가 정진이다. 그는 서혈원(西穴院)양부(楊孚)로부터 배움을 받았는데 양부가 바로 도헌의 법을 이은 제자이다. 900년(효공왕 4)에 긍양은 중국으로 가서 도연(道緣)에게 법을 얻고 924년(경애왕 1)에 귀국하여 스승 양부가 있던 백엄사(伯嚴寺)에 머물렀다.
여기에서 그는 크게 이름을 떨쳤으나 더 좋은 도량을 찾아 935년에 희양산으로 가서 이미 허물어진 봉암사 터에서 새로 절을 일으켜 봉암사라 하고, 제자들을 일깨워 불조(佛祖)의 가르침을 크게 선양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태조와 혜종·정종·광종의 존경과 믿음을 받았으며, 형초(逈超) 등 많은 제자를 배출하여 희양산의 선풍을 확립시켰다.
그의 비문에는 법계가 밝혀져 있는데, 중국 남종선의 혜능(慧能)의 법손인 마조(馬祖)의 제자 신감(神鑑)으로부터 법을 받은 신라의 혜소(慧昭)가 귀국하여 도헌에게 법을 전하였으며, 도헌이 양부에게 전하고 양부가 긍양에게 법을 전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본 도헌의 비문에 있는 계보와는 전혀 다르다.
만약에 도헌이 혜은의 법을 얻고 또 혜소의 법도 계승하였다면 도헌의 비에서 혜소의 제자라는 말이 한 마디도 보이지 않을 까닭이 없다. 또한, 도헌의 비에서는 분명히 법랑 및 북종선의 신행 계통으로만 되어 있는 데도 그 바로 법손인 긍양의 비문에는 그 법통에 관해서는 전혀 한 마디의 언급도 없으면서 도헌을 남종선 계통인 혜소의 제자로 느닷없이 계보를 바꾸어놓고 있다.
이는 분명히 긍양대에 와서 종전 북종선 계통인 계보는 버리고, 남종선 계통을 취하면서 마침 그때 법손이 흥성하지 못한 혜소를 도헌의 앞에다 가져다 붙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본다면 도헌은 봉암사에 머무른 일이 있을 뿐이며, 희양산의 조사는 혜소로 보아야 할 것 이고, 개산조는 긍양이 옳다고 할 것이다. 실은 그 조사도 긍양이 희양산을 크게 일으킨 다음에 그에 의하여 혜소로 모셔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긍양의 뒤를 이은 형초의 제자에 지종(智宗)이 있었다. 지종은 희양산의 형초로부터 법을 받은 뒤에 중국으로 가서 연수(延壽)로부터 심인(心印)을 얻고, 국청사(國淸寺)정광(淨光)으로부터 천태교관(天台敎觀)을 배우고 귀국하였으나, 현계산에서 생을 마친 것으로 보아 끝까지 희양산인(현계산은 희양산파와 관계있음)으로서 자처하였던 것이다.
그보다 훨씬 뒤의 원진국사(圓眞國師)도 희양산 봉암사의 동순(洞純)에게 득도한 제자였다. 그는 지눌(知訥)에게도 배우고, 이자현(李資玄)의 능엄선(楞嚴禪)에도 영향을 입었으므로 희양산인으로 일관하였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선문조사례참의문(禪門祖師禮懺儀文)

  • 『조선불교통사(佛敎通史)』(이능화,신문관,1918)

  • 朝鮮金石總覽  (朝鮮總督府, 1919)

  • 「선종구산내력(禪宗九山來歷)」(김영수,『동양사상연구』,1937)

  • 「한국선종략사(韓國禪宗略史)」(권상로,『백성욱박사회갑기념불교학논문집』,1959)

  • 「희양산선파(曦陽山禪派)의 성립과 그 법계(法系)에 대하여」(김영태,『한국불교학』 4,1979)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김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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