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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진(喜璡)

    불교인물

     해방 이후 조계종 총무원장, 한국불교총연합회회장 등을 역임한 승려.   선승(禪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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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이후 조계종 총무원장, 한국불교총연합회회장 등을 역임한 승려.선승(禪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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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성은 손씨(孫氏). 호는 경산(京山). 함경북도 북청 출신. 1936년 금강산유점사(楡岾寺)로 출가하여 수암화상(秀庵和尙)을 은사로 득도하였다. 1940년 유점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하였고, 1945년 7월 동래 범어사(梵魚寺)에서 동산화상(東山和尙)을 수계사로 보살계를 받았다.
    그 뒤로 동래의 금정선원(金井禪院), 예산수덕사(修德寺)의 만공(滿空), 송광사 효봉(曉峯), 통도사 극락선원 경봉(鏡峯)의 지도 아래 한철씩 참선수행하였다. 1949년 8월 경남교무원에서 대덕법계(大德法階)를 받고 그 뒤로 금정선원에 머무르면서 한국불교의 중흥을 계획하였다.
    1955년 8월에는 조계종 중앙종회위원에 피선되었고, 1956년 불교정화운동에 참가하여 투쟁하였다. 1958년 조계종 총무원 교무부장에 피임되었고, 1962년 12월 동국대학교 재단이사장에 피선되었다.
    당시에 정화운동은 극한의 고비를 넘기고 비구·대처승의 양측이 통합하기로 하고 종정에 효봉, 총무원장에 기산(綺山)을 선임하여 1년 가까이 나가다가 대처승 측이 또다시 이탈하였으므로 1963년 7월 효봉을 종정으로, 청담(靑潭)을 종회의장으로, 그를 총무원장으로 추대하였다.
    1972년 5월대구동화사(桐華寺) 주지, 1973년 1월 다시 조계종 총무원장에 취임하였고, 1974년 종단협의회 회장, 1975년 한국불교총연합회 회장, 1976년 한국반공연맹 이사, 1977년 성북동성라암(星羅庵) 수도원의 조실(祖室), 1978년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에 피임되었다. 1979년 11월 조계종 제19대 총무원장에 피임되었고, 같은 해 12월 저서인 『삼처전심(三處傳心)』을 간행하였다.
    그 때 종단 안에는 종단의 질서와 승려의 기강이 바로잡히지 못하고 서로 파당을 지어 종권쟁탈에 혈안이 되어 많은 분규가 일어났다. 이에 종단의 화합단결을 위하여 힘쓰고 상호불신풍조를 제거하는 한편, 대처승측을 상대로 법원에 제소하여 계류중인 소송건을 취하하는 등 종단 일에 노심초사하다가 12월 24일 입적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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