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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선(金光旋)

    원불교인물

     원불교의 성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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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김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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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불교의 성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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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은 성섭(成燮), 법호는 팔산(八山). 전라남도 영광 출신. 창교주 박중빈(朴重彬)의 9인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한문을 수학하였으며 17세 때는 음양복술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 뒤 농사를 지으면서 틈틈이 상업도 하고 31세 때는 김씨문중의 대동보를 집필하기도 했다.
    이 무렵 12세 연하인 박중빈과 의형제를 맺고 수도정진하는 그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하였다. 1916년 4월 박중빈이 26세로 대각(大覺)을 얻자 첫 제자가 되었다. 인생의 새출발을 결심한 그는 이웃 주민들로부터 받은 3천여원의 채권증서를 불살라버리기도 했다.
    초기 원불교 교단의 큰 행사였던 저축조합·방언공사(防堰工事)·혈인기도(血印祈禱)를 진행할 때 중심소임을 담당하였으며, 방언공사 당시에는 둑에 물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고 자신의 몸으로 물구멍을 막아 위기를 극복하기도 했다.
    원불교총부 건설에도 적극 참여하여 농업부원으로 일하였다. 총부농업부원·서무부장·총부감원·마령교무·영산서무부장·원평교무·총부순교무 등을 역임하였다.
    마령교당교무로 봉직할 때는 낮이면 몸소 밭을 갈고 땅을 파며, 밤에는 야학을 실시하여 주경야독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1957년에 대봉도(大奉道) 법훈(法勳)을 추증받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회보(會報)』 52( 불법연구회 ,1939. 2.)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김홍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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