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결송장보(決訟場補)

유교문헌

 조선후기 문신·학자 이병원이 예에 대한 시비를 막기위하여 표준을 정하기 위하여 저술한 예서.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결송장보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후기 문신·학자 이병원이 예에 대한 시비를 막기위하여 표준을 정하기 위하여 저술한 예서.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편찬/발간 경위
처음 이상정(李象靖)이 예설에 대한 이설이 많이 생기고 심지어는 복제문제로 당화(黨禍)마저 일어나자 『가례』를 근간으로 미비된 부분을 보충하고, 시비의 소지가 많은 점을 가려서 송유(宋儒)들의 제설과 우리나라의 선유인 이황(李滉)·김장생(金長生)·정경세(鄭經世) 등의 예설을 참작하여 『결송장(決訟場)』을 만들었는데, 그의 손자 병원(秉遠)이 뒤의 학설과 자기의 의견을 보충하여 ‘결송장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26년 문원만(文元萬)에 의하여 간행되었는데, 권두에 조긍섭(曺兢燮)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김형모(金瀅模)의 후서가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서지사항
10권 5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권1∼7은 상례 82편, 권8은 제례 8편, 권9·10은 통례(通禮) 15편, 관례 1편, 혼례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순서는 『가례』의 순서를 따르지 않았다. 상례에 관한 부분이 특별히 많은 것은 저자 자신이 상중에서 생각한 것과, 상례를 행하면서 분명하지 못한 점과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초종에 있어서 사람이 죽을 때 정침(正寢)에서 죽는 것으로만 규정되었으나 때에 따라 다른 장소에서 죽을 수도 있는데, 그 뒤 정침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과, 일반적으로 고복(皐復)을 한 뒤에 곡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곡을 먼저 하고 복을 뒤에 하는 것을 정설로 했다. 또한, 복에 사용했던 옷을 묻지 않는 것과, 어려서 상을 당해 복을 입지 못하다가 자라서 복을 다시 입는 추복(追腹)을 예가 아니라고 규정짓기도 했다.
「통례」는 관직에 있을 때 신주를 받드는 일, 이사할 때 사당을 옮기는 일, 세덕사(世德祠)·이사(里祠) 등에 대한 규정을 정했다. 「관례」에서는 상중에 관례를 행하는 절차와 관자가 어른을 뵙는 절차 등을 정했으며, 「혼례」에서는 국상 때 선비는 주혼(主婚)하지 않는 점, 옛날에는 혼인식에 절하는 예가 없었다는 것 등을 규정했다.
이병원은 원문에 할아버지의 해설은 ‘按(안)’자를 머리에 붙여 한 단 낮추어 썼고, 자기의 의견은 ‘補(보)’자를 붙여 안자에서 한 단 낮추어 썼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권오호
영역닫기영역열기 관련 멀티미디어 (1)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