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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영(姜道永)

천주교인물

 천주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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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세례명은 마르코. 서울 출생.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사제서품(敍品)을 받았다. 가세가 여의치 않아 늦게까지 교육의 혜택을 입지 못하다가 장성한 후 당시 명동성당에 부설된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1883년(고종 20) 4명의 신학생과 함께 일본·홍콩·싱가포르를 거쳐 페낭(Penang) 신학교에서 유학했다. 그곳에서 10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1892년 귀국하여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서 계속 수학하고, 1896년 4월강성삼(姜聖參)·정규하(鄭圭夏) 등과 함께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그 해 경기도 안성의 미리내의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 선종할 때까지 그곳에서 사목하면서 안성·양성·용인·진위·수원·이천 등지의 전교활동을 주관하였다.
34년 동안 이 지방에 천주교 신앙을 심어주었고, 해외에서 얻은 지식을 가지고 지방민들에게 양잠과 농업기술을 지도하였다. 한편, 미리내에 한국인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金大建)의 묘소가 있었기에 이곳에 경당(經堂)을 세워 김대건신부 현양사업을 일으켜 천주교인들의 신심을 굳히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서울 대교구총람(大敎區總覽)』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가톨릭출판사,1984)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이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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