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강성삼(姜聖參)

천주교인물

 천주교 신부.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강성삼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세례명 라우렌시오.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鴻山) 출신.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만주에서 한국 입국준비를 하며 한국인신학생 양성을 선교사업의 하나로 계획하였던 주교 리델(Ridel)과 신부 로베르(Robert) 등의 프랑스 선교사들은 1877년 한국 입국에 성공하자 곧 신학생 교육에 착수, 신학생을 선발하여 교육하였다.
한편, 한국정부의 천주교탄압이 약화되면서부터는 국내의 신학생 교육과 병행하여 일부 신학생들을 말레이반도의 페낭(Penang)으로 유학시켰는데, 1882년에서 1884년까지 유학생수는 21명에 이르렀다. 그들 중 제일 먼저 페낭으로 유학간 사람이 강성삼이었다.
그는 일본 나가사키(長崎)로 건너가 신부 코스트(Coste, 高宜善)의 지도로 1년간 예비신학교육을 받은 뒤 페낭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그곳의 기후와 풍토가 우리 나라 사람에게는 맞지 않아 병에 걸리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1884년부터는 신학생의 파견을 중단하고 유학중에 있는 신학생들도 철수시키기로 한 교구의 결정에 따라, 1890년에 귀국하여 서울 용산예수성심신학교에서 학업을 마쳤다.
1896년 4월 26일약현성당(藥峴聖堂)에서 강도영(姜道永)·정규하(鄭圭夏)와 함께 사제서품을 받음으로써 우리나라에서 서품된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 신부가 된 뒤 곧바로 임지인 부산절영도(絶影島)로 내려갔고, 1898년 1월에 경상남도 밀양군 하남면 명례리로 옮겨갔으며, 그 뒤 6년간 양산·언양·진양 등 14개 공소를 돌아다니며 전교하다가 죽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최석우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