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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군(加平郡)

인문지리행정지명

 경기도 동부 북한강 중류에 위치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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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경기도 동부 북한강 중류에 위치한 군.
영역닫기영역열기개관
동쪽은 강원도 춘천시·홍천군, 서쪽은 포천시·남양주시, 남쪽은 양평군, 북쪽은 포천시와 강원도 화천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7°16'∼127°37', 북위 37°19'∼38°55'에 위치한다. 면적은 843.6㎢이고, 인구는 6만 3226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6개 면, 125개 행정리(60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에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자연환경
동북지방에 위치한 지역으로 북쪽에는 광주산맥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지나고 남쪽에는 북한강이 동서로 흐르고 있다.
북쪽의 광주산맥의 줄기에는 화학산(華虐山, 1468m), 응봉(1435m)·촛대봉(1125m)을 비롯한 1000m 이상의 높은 산 외에 가덕산(加德山, 858m)·북배산(北培山, 867m)·계관산(鷄冠山, 855m)·보납산(寶納山, 330m) 등이 있다. 이것들이 강원도의 화천군 및 춘천시와 경계를 이룬다.
그리고 서쪽에는 국망봉(國望峰, 1168m)·강씨봉(姜氏峰 830m)·청계산(淸溪山, 849m)·원통산(圓通山, 567m)·현등산(縣燈山, 936m)·주금산(鑄錦山, 814m)·개위산(675m)·서리산(825m)·축령산 등이 있다. 이것들이 경기도 포천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중앙에는 명지산(明智山, 1267m)·매봉(927m)·칼봉산·불기산(701m)·대금산(601m) 등이 있다.
이 지역을 흐르는 하천으로는 북한강과 그 지류인 가평천과 조종천(朝宗川)이 있다. 북한강은 동서로 흐른다. 북면에서 발원하는 가평천과 조종면에서 발원하는 조종천은 15개의 지류와 합류하여 곳곳에 분지를 만들면서 북서∼동남향으로 흘러 북한강에 합류한다. 이들 하천과 북한강이 만나는 청평면 청평 사이에는 15km의 좁은 통곡(通谷)이 발달하고 있다. 이 통곡은 경춘가도와 경춘선이 지나는 교통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북한강 남쪽에는 장락 산맥이 남북으로 지난다. 이 산맥의 동쪽에 있는 왕터산(410m)·나산(628m)·봉미산(856m)이 홍천군, 양평군과 경계를 이룬다. 서쪽에는 화야산(化也山, 755m)·통방산(通方山, 650m)·중미산(仲美山, 834m)이 양평군과 경계를 이룬다. 중앙에는 청평호(淸平湖)가 있으며 주변에는 넓은 분지가 발달하고 있다. 그리고 광주산맥의 지질은 대부분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이다. 북한강 남부지역은 규암층으로, 청평호 주변은 변성퇴적암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평군은 중부 내륙에 위치하고 있어 대륙성기후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연평균기온 10.5℃, 1월 평균기온 -6.6℃, 8월 평균기온 25.3℃로 같은 위도의 해안지역보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다, 연강수량은 1,336㎜이고 8월 평균강수량은 300㎜를 상회하고 1월 평균강수량은 30㎜이다. 무상기일은 180일로 서리는 10월 중순경에 내리고 4월 중순경에 끝난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역사
구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가평읍 마장리 야철주거지(冶鐵住居址)가 발굴되었다. 여기에서는 민무늬토기·석기·김해토기·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로 미루어보아 이 지방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조선시대 북방 부족사회이던 맥국(貊國)이 북한강을 지배하고 있었으니, 가평은 그 지배를 받아왔다고 믿어진다.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차지하자, 가평은 고구려 근평군(斤平郡, 또는 竝平郡)이 되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757년(경덕왕 16)에는 가평군(嘉平郡, 또는 加平郡)으로 개칭되었다. 속현으로는 조종현(朝宗縣)이 있었는데, 이것은 고구려 때에 심천(深川)·복사매(伏射買)라 불렸고, 신라시대에는 준수(浚水)라 일컬어졌다.
1018년(현종 9)가평은 춘주부(春州府)에 예속되었다.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북면 적목리에 성을 축조하여 난을 피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도성재’라고 하는 곳에 성곽의 흔적이 있다. 공민왕이 산 정상에 올라가 송경(松京)을 바라보았다고 하여 국망봉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1413년(태종 13)에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이관되어 현감이 두어졌다. 1507년(중종 2)에 임금의 태(胎)가 봉안된 곳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어 가릉군(嘉陵郡)이라고 개명되었다. 1599년(선조 33)에는 명필 한호가 가평군수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었는데 이를 계기로 시인·묵객과 학자들이 산수 좋은 이곳을 찾아와 학문에 전념하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광해군 때에 김육(金堉)이 이곳에 와서 대동법(大同法)과 시헌력(時憲曆)을 연구하였으며, 그 아들 김좌명(金佐明)·김우명(金佑明)도 이곳 출신이다. 1697년(숙종 23) 역신 이영창사건(李榮昌事件)으로 현으로 격하되었다가, 10년 뒤에 다시 군으로 승격되었다.
양주목(楊州牧) 관할에 있던 가평군은 1888년(고종 25)강원도에 편입되었고, 1895년에는 경기도 포천군에 일시 편입되었다가 1년 후가평군으로 독립되었다. 『가평군읍지』에 의하면, 1871년 당시 호수는 2,744호, 인구는 6,814명, 7개 면 86개 리였다.
1927년에는 호수 6,163호, 인구는 3만 3934명이었고, 1985년에는 인구 약 6만 명에 이르렀다. 1942년양평군 설악면이 가평군으로 편입되었고, 내서면·남면은 가평면으로 통합되었다.
1950년 6·25 때 가평이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가자 청년들이 반공산악동지회·임산의혈대·학도의용대 등 결사대를 조직해 싸웠다. 6·25 때 이 지방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있었는데, 이 전투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1958년 3월 15일가평읍 읍내리에 가평지구 전투전적비를 세웠다.
또, 읍내리에는 6·25전쟁 때 참전했던 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뉴질랜드·영국 등 영연방(英聯邦) 4개국의 전공을 빛내기 위해 1967년 9월 30일 세운 영연방참전기념비가 서 있으며, 북면 이곡리에는 1975년 11월 7일 세운 캐나다군 참전기념비가, 북면 목동리에는 1967년 9월 30일 세운 호주군 참전기념비가 있다.
1963년 일부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져 외서면의 입석리·내방리·외방리가 양주군으로 편입되었으며, 1973년에는 가평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이웃 양평군의 서종면 삼회리가 외서면으로, 노문리 일부가 설악면으로 편입되었다. 2004년에는 외서면이 청평면으로 개칭되었다.
2015년에는 하면(下面)이 조종면(朝宗面)으로 개칭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유물·유적
가평읍 마장리에서 10여 개의 수혈주거지(竪穴住居址)가 발견되었다. 이 수혈주거지에서는 사철(砂鐵)을 녹여서 선철(銑鐵)을 생산한 흔적이 보인다. 유물로는 민무늬토기·석기·김해토기·철기가 공존하고 있어서 서기전 12세기경부터 서기후에 걸친 중서부지방 문화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주요 사찰로는 운악산 현등사와 화야산 운곡암(雲谷庵)이 있다. 불교유적은 조종면 운악리의 현등사(懸燈寺) 경내의 현등사삼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3호)이 있다. 이것은 고려시대의 탑으로 불교 조계종의 개조인 보조국사의 사리탑이다.
이 외에도 지진탑(地鎭塔)·함허대사부도(涵虛大師浮屠)·북악부도(北岳浮屠)가 있다. 특히 현등사 동종은 1619년(광해군 11)에 주조된 것으로 조선시대 범종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유교문화재로는 가평읍 읍내리에 가평향교가 있으며, 설악면 선촌리에 미원서원지(迷源書院址, 일명 景賢壇)와 청평면 청평리에 잠곡서원지(潛谷書院址)가 있다. 미원서원은 1573년(선조 6)경에 조광조(趙光祖)·박세호(朴世豪)·김식(金湜)·남언경(南彦經) 등 12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분묘로는 가평읍 하색리에 고려의 무신인 이방실장군묘(李芳實將軍墓,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5호), 상면 태봉리에는 명종·선조 때의 문신인 이정구(李廷龜) 선생의 묘(경기도 기념물 제79호)가 있다. 또한 영조·정조 때의 영의정 이재협의 묘, 명종·인조 때의 문신인 유몽인(柳夢寅)의 묘, 개화파 인물인 오경석(吳慶錫)의 묘가 군내에 있다.
군내 연안 이씨 종중에는 월사집목판(月沙集木板,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3호)과 연안이씨의 삼세비각(三世碑閣)이 보존되어 있다.
기념물로는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천보의 고가와 그 후원에 가평연하리향나무(경기도 기념물 제61호)가 있다. 조종면 대보리에는 조종암(경기도 기념물 제28호)과 그 일대인 대보단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교육·문화
문헌상 최초의 교육기관으로는 1398년(태조 7)에 창건된 가평향교가 가평읍 읍내리에 있다. 1529년조광조를 추모하기 위해 경현단이 건립되었는데 1573년에 미원서원이라 일컬어졌다. 여기에서는 많은 유생이 교육을 받았다. 이 밖에도 청평면 청평리에는 김육을 추모하고 그의 학문을 본받기 위하여 잠곡서원(潛谷書院)이 세워졌다. 이 곳은 1707년에 사액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모두 철거되었고, 현재는 신위만이 안치되어 있다.
최초의 신교육기관은 1911년 개교한 가평명륜보통학교로서, 1919년 3월 16일 전교생들이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이 학교가 현재의 가평초등학교이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3개교, 중학교 6개교, 고등학교 5개교,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가 있다.
1982년에 민간단체로 출발한 가평향토문화추진협의회(가평문화원의 전신)는 각종 향토문화유물 및 자료를 조사, 정리하여 문화개발에 공헌하고 있다. 1985년 12월에 개관된 가평군립도서관은 청소년들의 면학에 크게 공헌할 것으로 기대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민속
이 지방에서는 경기도·강원도의 민속놀이가 대부분 행해지는데, 특유한 놀이로는 회다지놀이와 어린이놀이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가평읍 상색리의 회다지놀이는 다복하고 장수한 사람이 죽었을 때 호상이라 하여 슬픈 마음을 해학적으로 풀어 회다지소리에 따라 흥을 돋우면서 슬픔을 달래는 묘역작업을 놀이화한 것이다. 놀이는 상여행렬과 회다지놀이로 구분되는데, 상여가 장지로 갈 때에는 향두가를 부르며 간다.
장지에 도착하면 상여를 내려놓고 일부는 상여를 해체하고 일부는 산역을 시작한다. 회다지꾼 8명이 선소리에 맞추어 처음 6, 7분간은 느린 동작으로 2마치 회다지를 하다가 점점 흥이 나면 3마치 회다지로 점점 속도가 빨라진다. 회다지를 할 때에는 “슬프고 슬프도다! 석숭에 역만제를 어찌하여 슬프던가……”라고 시작되는 성토가를 부르며 한다. 이렇게 내광다지가 끝나면 광중을 제거하고 평토다지기와 봉분다지기를 하고 끝난다.
어린이들의 놀이로 말놀이·조조잡기 등이 있다. 말놀이는 여럿 중에서 대장 두 사람을 정해 대장이 손을 잡아 문을 만들면 나머지가 문 아래로 통과하는데, 마지막 사람이 통과할 때 막아서서 “콩죽이 좋은지 팥죽이 좋은지.”를 묻는다. 거꾸로 나머지 사람도 그렇게 물으면 콩죽편과 팥죽편이 구분되는데 양편이 같이 줄다리기를 하여 승부를 겨룬다.
조조잡기는 조조·공명·관우·장비 등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이 쓰인 종이를 나누어 가지고는 ‘공명’을 집은 사람이 아무 아무에게 가서 ‘조조’를 잡아오라고 명하는 놀이이다. 만약 제대로 못 뽑았을 때에는 벌로 노래를 부른다. 그 밖에도 한쪽발귀신놀기 등이 있다.
이곳에서는 산신제·대동제 등의 동제를 신사(神祠)에서 지낸다. 신사는 마을 중앙에 있는 산 위에 설치되어 있으며, 두 칸짜리 15평 정도의 규모이다. 제관은 촌락의 연장자가 생기복덕(生氣福德)한 남자 3인을 선정한다. 제관은 3일 전부터 부정한 것을 피하고, 촌락과 제관의 집에는 금줄을 치며 적색토를 뿌려둔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경우에는 마을에 맹호가 나타나서 사람과 가축을 해치고 괴질이 유행하며 마을에 싸움이 일어난다고 전해온다. 제물로는 검은 돼지·술·삼색과일 등을 진설하며, 제사가 끝난 뒤에는 제관 등이 음복한다.
영역닫기영역열기설화·민요
설화로는 이 지역과 관련된 전설이면서도 다른 지역에도 두루 분포된 전설이 전승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아기장수전설과 장자못전설을 들 수 있다. 아기장수전설은 청평면 하천 2리에 전승되고 있다.
옛날 이 곳 어느 농가에서 사내아기를 낳았는데,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있었다. 낳은 지 3일도 안 되었는데 산모가 밖에서 돌아오니 어른 키만한 높이의 선반 위에서 아기가 놀고 있었다. 이 아기가 장수인 것을 알고 놀란 부모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맷돌을 아기 배 위에 얹어 눌러 죽였다.
그러자 서북쪽의 산에서 흰 용마가 솟구쳐 날아와 그 집 주위를 큰 소리로 울면서 돌다가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용마가 죽은 자리라 하여 이 곳을 ‘마죽이(마직이)’라 부르며 용마가 나온 산을 마산(馬山)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또한, 용마가 나온 구멍에는 효험이 큰 약수가 있어 각처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이러다가는 온 마을이 병신들로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한 마을사람들이 개를 잡아 약수터에 넣자 약수가 말라버렸다는 이야기가 아울러 전해지고 있다.
또 ‘장자못전설’은, 옛날 부자집에 동냥하러 온 중에게 인색한 부자가 돈 대신 쇠똥을 자루 속에 넣어주었다. 이를 지켜본 그 집 며느리가 쌀을 한 되 주며 용서를 비니, 중은 내일 정오가 되면 뒷산으로 올라가되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튿날 정오에 뒷산을 향하여 고갯길을 오르던 며느리가 마을에서 나는 천둥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며느리는 그 자리에서 바위가 되고 그 부자집은 연못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 연못을 장자늪이라 부르고 마을의 이름을 장자골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홀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온 산을 헤매다가 돌아와 보니 닭장 속에 수꿩이 여러 마리가 있더라는 가평읍 복장리의 장원한(張遠翰)에 얽힌 일화, 죽은 남편을 따라 순절한 북면 화악리 출신의 열녀 정씨(丁氏)의 일화 등 효자·열녀담이 전해지고 있다.
이 고장에 구전되는 민요는 노동요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산악지대로서 밭이 많기 때문에 밭농사요가 중심인데, 「밭갈이노래」는 가락이 느리고 구성지다. 이것은 ‘이러’등 소 모는 소리로 구성된 여음이 중심이고, 일을 빨리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자는 사설이 간간이 삽입되어 있는 아주 단조로운 노래이다.
여성들이 베를 짜면서 부르는 「베틀노래」도 많이 전해지는데 형식이 정연하고 내용도 풍부하다. “좁쌀같은 뉘를놓아/입쌀같은 고치따서/청실홍실 달아놓고/이월을경 가미찍어/한올엘랑 잉어걸고/구름엘랑 베틀놓고/황경나무 복바디집/왈칵달칵 짜노라니……”라는 「베틀노래」는 계수나무 찍어 베틀을 만들고 베틀을 난간에 놓는 대목으로 시작하는 일반적인 것과 달리 누에를 키워 고치 따는 것을 첫 대목으로 하고 있고, 「줌치노래」 등 타령요류의 사설을 수용한 것도 있다.
이 밖에도 「흥타령」 등 비기능요인 타령요류가 전하고, 경기잡가류도 많이 불린다. “구슬구슬 동풍 궂은 비 오구요/시화연풍에 임섞여 노잔다/에헤이 에헤요/어루마둥둥 네가내사랑이라.”와 같은 「상사노래」는 경기잡가의 영향을 받고 있다.
「상사노래」 가운데 “에―이에―차문주가하처재(借問酒家何處在)요/목동요지(牧童遙指) 살구나무촌이라/에라 놓아라 못 놓겠구나/총독 분부라도 못 놓겠구나.”는 사설과 후렴은 각기 다른 경기잡가류에서 영향을 받으면서 민족항일기에 생겼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영역닫기영역열기산업·교통
토지 중 임야가 83.5%, 경지가 9.4%, 하천부지가 3.2%이다. 2008년 현재 경지면적 4,049㏊ 중 논이 3,985㏊, 밭은 1,683㏊로 계속 감소하는 추세이다. 주요 농작물로는 쌀·콩·팥·옥수수 등이 있고 채소류로는 고추·배추·호박이, 과실류로는 사과·포도가 있으며, 특용작물로는 참깨·들깨 등이 있다.
최근 농가 부업으로 임산자원 개발이 장려되면서 잣·호도·도토리·대추·은행·표고버섯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는데, 잣은 경기도 생산량의 64%, 호두는 33%를 차지한다. 특히, 상면의 행현리와 상동리, 가평읍의 승산리 등이 주요 생산지이다.
축산업으로는 닭·돼지·토끼·사슴·노루 등이 사육되고 있다. 이 군은 내륙에 있으나 청평호를 중심으로 양식업이 발달하였다. 설악면의 회곡리·사통리, 청평면의 호명리는 잉어가두리 양식업이 활발하다. 제조업은 매우 빈약하나 섬유, 식료품, 비금속, 조립금속이 발달하였다. 전기시설로는 1943년에 건설된 청평발전소, 1980년에 건설된 양수발전소가 있다. 광업으로는 주로 규석이 많이 생산되며, 이 외에도 흑연과 고령토가 생산된다. 상업 시설로 정기 시장이 가평읍·설악면·청평면·조종면 등에서 열리고 있으나 가평읍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교통은 국도 46호선이 남서∼북동방향으로 지나고 국도 37호선이 서북∼동남으로 지나 청평면에서 46호선과 만나고 있다. 국도 46호선은 흔히 경춘가도라 불리고 있는데 서울∼가평간 61㎞로 4차선 고속화 도로이다. 지방도로로 464호선이 국도 37호선과 설악면에서 분기하여 홍천군으로 지나고 있다. 철도는 경춘선이 국도 46호선과 평행하게 지나고 있다. 교통기관이 발달되기 전에는 서울과의 교류는 주로 뱃길에 의존하였다.
가평군은 높은 산맥이 곳곳에 솟아 있어 이웃과 교류가 어려웠으나 강원도 춘천시와는 남실·싸리재고개, 연천군과는 도성·강씨봉·갈마·노고시고개·귀목·화목·노루미, 남양주와는 수레넘어 고개 등을 통해 교류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관광
이 지역의 광주산맥은 차별침식을 받아 화학산을 중심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완만한 기복을 이루면서 구조곡을 따라 하천이 흐르고 있으므로 주변에 많은 관광지를 형성하고 있다. 북한강은 이 지역의 동쪽 경계를 따라 흐르면서 청평호를 이루고, 그 지류인 가평천과 조종천 연안에는 작은 분지와 곡저지대가 형성되어 이 곳에 관광지가 발달되었다.
특히 북한강 연변에는 화강편마암이 차별침식을 받아 이루어진 기암절벽과 잣나무 숲이 우거져 천연의 피서관광지를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명산·폭포·계곡 등의 명승고적이 분포되어 있다.
관광명소로 유명한 곳은 북한강 연변의 피서관광지인 새터유원지를 들 수 있다. 이 곳은 주로 서울 거주 학생들의 단체훈련 장소로 사용되는 민박집이 많고, 요트, 수상스키훈련장, 윈드서핑 등의 물놀이 시설이 잘 되어 있다. 또한 신당3거리에서 약 6㎞ 거리인 광악분교 부근까지 절경을 이루고 있는 화악계곡과 화악산, 경기도의 소금강이라고 불리는 운악산, 설악면에서 양평군 옥천면에 걸쳐 있는 유명산, 가평읍에서 서북쪽으로 20㎞ 지점에 위치한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으로 유명한 명지산과 10m 높이의 직폭인 명지폭포가 있다.
북면 적목리에 위치한 속세와 단절된 신선마을로 알려진 조무락골과 목호폭포는 흐르는 물을 그대로 마셔도 좋을 만큼 깨끗해서 서울에서 온 피서객들에게 애용되고 있다. 청우봉과 녹수봉 사이의 녹수계곡에는 유원지가 곳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울창한 잣나무숲이 삼림욕에 적당하다.
그 밖에 숲과 계곡이 때묻지 않은 산장유원지가 청평면 하천리에 있으며, 청평면 대성리에는 대성리유원지가 강변을 따라 8만여 평의 레저타운을 이루고 있다. 또한, 조종암·현등사·대보단·무우폭포(舞雩瀑布)·수락폭포(水落瀑布)·용추폭포(龍湫瀑布) 등은 새로운 관광명소로 각광 받고 있으며 청평호반 국민관광단지는 호반관광휴양지로 이용되고 있다.
조종암에는 암벽에 각자한 비문이 있는데 그 비문은 송시열의 필적이라고 확인되어 유명해졌다. 현등사는 신라 법흥왕 때 인도에서 온 마리타미 승을 위해 창건한 절로 알려지면서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읍·면
1. 가평읍(加平邑)
군의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145㎢, 인구 1만 9933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고려시대에서 조선 후기까지 그 소속이 강원도와 경기도로 번갈아 바뀌는 변화를 겪었다. 본래 포천군에 속해 있다가 1896년에 가평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군내면(郡內面) 10개 리에다 내사면(內四面) 6개 리를 통합, 군내면과 기존 10개 리를 6개 리로 통폐합한 남면(南面) 등 2개 면 지역에 해당하였다. 1942년청평댐 담수로 인해 남면이 수몰되자, 이화·산유·복장·금대리를 병합, 가평면으로 개칭되었다. 1973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광주산맥의 연봉인 계관산·불기산(佛岐山, 600m) 등을 구불구불 흐르는 가평천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곳에 산간분지가 만들어져 있다. 읍의 서북쪽은 매봉(929m)·대금산(大金山, 704m) 등의 산지를 이루며, 가평천유역과 청평에 이르는 통곡에는 많은 산간분지의 형성으로 취락이 조성되었다. 특히 가평천과 통곡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읍내리·대곡리 등의 시가지는 군내의 최대 규모이다.
경지율은 10%가 조금 넘고 논농사에 비해 밭농사가 약간 우세하나, 영세농가가 대부분이다. 한우·돼지의 사육과 양봉이 비교적 활발하고 밤과 잣의 산출이 많으며, 표고버섯의 집산지이다. 제조업체 수가 군내에서 가장 많으며, 개곡리에서 규석을 생산한다.
교통은 경춘국도와 함께 상색역과 가평역을 통과하는 경춘선이 가로지른다. 이 밖에 가평천을 따라 363번 지방도가 읍을 종단하며, 읍의 남서쪽에서 북동 방향으로 46번 국도도 통과한다. 문화유적은 읍내리에 가평향교, 하색리에 이방실장군묘가 있다. 관광지로 승안리에 아홉군데 비경을 자랑하는 용추구곡(龍湫九曲)을 비롯하여 경반리의 수락폭포와 경반계곡 등은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읍내(邑內)·대곡(垈谷)·달전(達田)·하색(下色)·상색(上色)·두밀(杜密)·경반(鏡盤)·승안(升安)·마장(馬場)·개곡(開谷)·이화(梨花)·산유(山柳)·복장(福長)·금대(金垈) 등 14개 리가 있다.
2. 북면(北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231㎢, 인구 3,99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목동리이다.
본래 포천군에 속해 있다가 1896년가평군으로 편입되면서 상북면(上北面)과 하북면(下北面)으로 나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상북면 3개 리, 하북면 5개 리, 그리고 영평군(永平郡)·이동면(二東面)·적목리(赤木里)가 합쳐져 8개 리로 통폐합되었다.
명지산·강씨봉·국망봉·화악산·촛대봉·가덕산 등 광주산맥의 높은 연봉들이 북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빙 둘러싸고 있다. 그 사이에서 발원하는 도마천·석룡천·백둔천·화악천 등이 남류하여 가평천을 형성하고, 그 지류 일대에 조성된 일부 평지에 취락이 들어서 있다. 경지율은 미미한 수준이며 밭농사를 주로 행하는 지역이다.
가평천을 따라 발달된 관광지를 중심으로 도로망이 퍼져있는데, 363번 지방도가 남에서 북서로 종단하며 10번 군도는 남부를 횡단한다. 이밖에 9·11번 군도가 동부를, 12번 군도가 서부를 지나며, 특히 중부전선의 군사요충지인 관계로 군사도로가 발달했다.
문화유적으로는 적목리에 조선 숙종 때 인물인 강영천(姜永天)의 효행을 새긴 효자문이 있다. 그리고 이곡리와 목동리에는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한 캐나다군과 호주군의 전공을 기린 기념비가 있다. 도대리·적목리 일대의 명지산군립공원은 수려한 계곡과 맑은 물, 그리고 붉게 물든 단풍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는 관광명소이다.
특히 적목리의 적목용소(赤木龍沼)는 가평팔경의 하나로 아름다운 주위 경관과 함께 한여름에도 추위를 느낄 정도다. 또한, 도내에서 제일 높은 산인 화악산에는 적목·구상나무 등이 많이 자생하고, 빼어난 산세로 유명해 찾는 이들이 많다.
목동(沐洞)·소법(所法)·화악(華岳)·도대(道大)·적목(赤木)·백둔(栢屯)·제령(濟寧)·이곡(梨谷) 등 8개 리가 있다.
3. 상면(上面)
군의 서쪽에 위치한 면. 면적 100.7㎢, 인구 5,54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연하리이다.
본래 포천군에 속해 있다가 1896년 가평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9개 리로 되었다.
개위산(介胃山, 675m)·주금산·상산(霜山, 823m)·축령산(祝靈山, 879m)·깃대봉(623m)·청우산(靑雨山, 619m) 등의 봉우리들이 서·남·동쪽으로 연봉을 이루고 있다. 북쪽으로는 협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조종천을 중심으로 넓고 완만한 산지사면에 넓은 경지가 펼쳐져 면의 중심부를 이룬다.
경지율이 10%를 약간 넘는 정도이며, 밭농사가 우위를 점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잡곡 등이며, 임산물로는 가평잣이 전국적으로 유명하며 특히 이 곳에서 집중적으로 생산된다. 그 밖에 각종 버섯류 재배와 약초·산나물 채취는 농가소득에 도움을 주며, 한우·젖소·산양·사슴 등의 사육도 활발하다.
교통은 37번 국도가 남동에서 북쪽을 지나 포천으로 연결되며, 362번 지방도가 서쪽에서 북으로 향한다. 문화유적은 연하리에 조선 영조 때에 영의정을 지낸 이천보(李天輔)의 고가(古家)와 그의 선조가 심었다는 가평연하리향나무가 함께 지정되어 있으며, 태봉리에 이정구선생묘와 월사집목판이 있다. 축령산에는 울창한 잣나무숲을 의미하는 축령백림(祝靈柏林), 기암괴석의 절벽과 녹수계곡, 그리고 조종천을 따라 조성된 관광지 등이 있어서 수도권 주변의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연하(連下)·항사(項沙)·행현(杏峴)·임초(林草)·덕현(德峴)·태봉(胎封)·상동(霜洞)·율길(栗吉)·봉수(烽燧) 등 9개 리가 있다.
4. 설악면(雪嶽面)
군의 남쪽에 위치한 면. 면적 141.5㎢, 인구 9,06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천리이다.
본래 양평군에 속해 있던 곳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상도면(北上道面) 14개 리와 북하도면(北下道面) 20개 리를 14개 리로 통폐합하여 양평군 설악면이 되었다. 1942년양평군에서 가평군으로 되었으며, 1973년양평군 서종면 노문리의 일부가 가평군 설악면 이천리로 편입되었다.
북한강과 홍천강의 남쪽에 위치해 북쪽은 청평호로, 동·서·남쪽은 인접지역과 경계를 이루는 왕터산(410m)·장악산(長樂山, 627m)·봉미산(鳳尾山, 856m)·유명산(有明山, 862m)·중미산(仲美山, 834m)·통방산(通方山, 650m)·화야산(禾也山, 755m) 등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모든 하천은 북류해 청평호에 흘러들며, 중앙의 큰 분지와 남쪽으로 뻗은 산간분지에 취락이 발달하였다.
경지율은 그다지 높지 않고 전답 비율이 비슷하나, 군에서 농가가 제일 많을 정도로 논농사의 비중이 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잡곡 등이며, 한우·닭·오리·토끼의 사육이 군내 제1위이다. 청평호를 끼고 있는 회곡리와 사룡리에는 잉어 가두리양식이 있다. 광산으로는 위곡리에 우석광업소가 있다.
교통은 37번 국도가 남에서 북서쪽으로 종단하며, 북부에는 2·4번 군도가 지나고 동쪽에는 394번 지방도 등의 도로망이 형성되어 있다. 청평호를 따라 댐까지 이르는 곳에 조성된 청평호반(淸平湖畔)은 청평댐 위 북한강에 조성된 인공호수로 산자수명한 자연경관 때문에 여름철 물놀이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며, 해마다 수십 만의 관광객이 다녀간다.
가일리에 위치한 유명산의 유명농계(有名弄溪)는 기암괴석의 계곡에 끊임없이 흐르는 맑은 물로 관광객들의 애호를 받는 장소이다. 또한 양평군과의 경계에 있는 유명산 일대는 등산객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다.
신천(新川)·미사(彌沙)·회곡(檜谷)·선촌(仙村)·사룡(沙龍)·송산(松山)·위곡(位谷)·창의(倉宜)·엄소(嚴沼)·설곡(雪谷)·묵안(墨安)·가일(可逸)·방일(訪逸)·천안(天安)·이천(梨泉) 등 15개 리가 있다.
5. 청평면(淸平面)
군의 중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112.3㎢, 인구 1만 478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청평리이다.
본래 포천군의 내서면(內西面)과 외서면(外西面) 지역으로 1896년가평군에 편입되면서 외서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외서면 전체와 양주군 상도면 장천리 일부가 7개 리로 통폐합되어 외서면이라 불렸다.
1942년에 청평수력발전소의 착공으로 침수된 남면(南面)의 호명·고성리가 병합·편입되었고, 1963년에 입석(立石)·내방(內坊)·외방(外坊)리가 양주군 수동면(水洞面)으로 이속되었다. 그 뒤 1973년양평군 서종면 삼회리가 편입되어 7개 리로 되었다. 2004년청평면으로 면이름을 바꾸었다.
남쪽의 청평호를 제외하면 깃대봉·화야산·호명산 등 모두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그 중앙을 지나는 경춘국도를 따라 약간의 평지가 분포하며, 이를 중심으로 취락이 발달되었다. 경지율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잡곡 등이며, 닭과 사슴의 사육도 활발하다. 가평읍 다음으로 제조업 및 산업시설이 많은 곳이다.
교통은 철도는 물론 국도 및 여러 도로망이 정비되어 편리한 편이다. 대성리역·청평·상천역을 지나는 경춘선 철도가 면을 종단한다. 이와 병행하여 경춘국도가 달리고 있으며, 46번 국도가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면을 종단하면서 6·8번 군도와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청평리에 지장(紙匠)이 있다.
그 밖에 삼회리에는 조선 태조가 그의 은사인 운곡(雲谷)을 위하여 세웠다는 운곡암이 있고, 청평리 잠곡마을에는 조선시대에 대동법 실시를 주장했던 김육(金堉)이 한때 귀양살이를 했던 잠곡서원지가 있다. 북한강의 맑은 물과 조종암 앞을 흐르는 물이 합류하여 장관을 이루는 황공탄, 하천리 산장지구의 국민관광유원지, 청평·대성리의 유원지 등에는 사계절 언제나 관광객으로 붐빈다.
또 다른 명소로 1980년 우리나라 최초의 양수발전소인 청평양수발전소가 상천저수지에서 가평읍의 복장리로 넘어가는 계곡에 준공되어, 부족한 전력 보완은 물론 관광자원으로도 크게 활용된다.
청평(淸平)·상천(上泉)·하천(下泉)·대성(大成)·호명(虎鳴)·고성(高城)·삼회(三會) 등 7개 리가 있다.
6. 조종면(朝宗面)
군의 서쪽에 위치한 면. 면적 113.1㎢, 인구 9,79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현리이다.
본래 포천군에 속해 있다가 1896년에 가평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리와 리간에 통폐합된 뒤, 2015년하면(下面)의 이름이 조종면(朝宗面)으로 바뀌었다.
동서남북이 모두 높은 산지로 둘러 쌓인 하나의 커다란 산간분지 속에 위치한다. 동쪽에는 대금산(大金山)과 명지산(明智山), 서쪽에는 청계산(淸溪山)과 운악산(雲岳山, 936m) 등 광주산맥의 연봉이 솟아 있고, 그 사이를 조종천이 많은 지류를 안고 남류하여 상면(上面)으로 흘러 들어간다. 조종천 중류의 넓은 분지지역과 조종천 지류의 산록계곡 사이에 취락이 발달하였다.
경지율은 10% 미만으로 미미하나 쌀과 잡곡이 일부 산출된다. 농가의 주 소득원으로써 잣·밤 등 임산물은 물론이고 한우·젖소·돼지의 사육도 활발하다. 교통은 남쪽인 현리를 중심으로 여러 도로망이 종횡으로 이어진다. 먼저 37번 국도가 현리를 지나는데 이 곳으로 7·8번 군도와 기타 도로가 연결되며, 북부쪽에 5·10번 군도가 통과한다.
문화유적은 하판리에 고려시대에 조성된 삼층석탑지진탑과 보조국사의 사리를 안치하였다는 현등사삼층석탑, 조선시대 양식인 석종형(石鐘形) 북악부도와 함허대사탑이 있다. 대보리에는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유덕을 추념한 글씨가 새겨진 조종암이 소재하는데, 이 일대를 대보단이라고 한다. 경치가 빼어나 경기도의 금강이라고 불리우는 운악산에는 신라 법흥왕 때에 창건했다는 현등사와 백년폭포, 눈썹바위 등 절경이 산재한다. 이 곳 정상인 망경대에서 바라보는 운취 또한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현(縣)·신상(新上)·하판(下板)·상판(上板)·신하(新下)·마일(馬日)·대보(大報) 등 7개 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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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이도남|황재기
개정 (2009년)
이도남(건국대학교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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