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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家長)

    가족개념용어

     한 가족 또는 한 집안을 이끌어 나가는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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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가족
    유형
    개념용어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한 가족 또는 한 집안을 이끌어 나가는 어른.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부계제였으므로, 가장은 대체로 한 가족에서 가장 항렬이 높은 남자로서 최연장자인 부(父) 또는 조부(祖父)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어 왔다.
    가장이라는 용어는 고려시대까지는 법령이나 법전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명나라의 『대명률(大明律)』을 해석하여 1395년(태조 4)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를 편찬할 때 원전에 사용된 가장이라는 용어를 대부분 그대로 답습하였고, 원전의 존장(尊長)이라는 용어를 족장(族長) 또는 가장(家長)으로 풀이하면서 가장이라는 용어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 경우 존장으로서의 족장 또는 가장은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한 가정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족장은 ‘한 집의 어른’이 아닌, 동족 또는 부계친족집단(父系親族集團)의 장(長)인 ‘집안 어른’을 가리키는 당시의 통용어였다. 이에 반해서 가장은 한 집에 동거하고 있는 노비나 고공(雇工)주 01)의 상전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 뒤 1462년(세조 8)에 편찬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가장이라는 용어가 세 곳에서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가장은 ① 조부·부·형과 같은 특정인을 지칭하는 용어로서보다는 혼인할 경우의 주혼자(主婚者) 또는 근친존속(近親尊屬), ② 첩(妾)에 대한 남편, ③ 노비나 고공에 대한 상전 또는 주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마지막의 경우 『대명률』에서는 한 집에 동거하고 있는 노비나 고공의 상전을 ‘가장’이라고 불렀지만, 이것을 해석하여 노비의 주인은 ‘주(主)’로, 그리고 고공의 주인 또는 고용주는 ‘가장’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런 구분은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경향을 반영한 것으로, 노비는 주인의 소유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노비의 주인 내지는 소유주를 뜻하는 ‘주’로 표현되었고, 예속성을 결여한 채 일정한 기간 동안 계약에 의하여 봉사하는 고공에 대해서는 그들이 가족원에 준한다는 의미에서 고용주를 ‘가장’으로 부른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노비의 상전과 고공의 주인을 구분하여 각기 ‘주’와 ‘가장’으로 부른 관습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1905년(고종 9)에 공포, 시행된 『형법대전(刑法大全)』에서도 가장이라는 용어를 단지 고공과의 관계에서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종전의 『경국대전』에서와는 달리 첩에 대하여 남편을 가장이라고 표현하는 대신 『형법대전』에서는 첩가장관계로 하지 않고 부첩관계(父妾關係)로 표현하였다.
    이와 같이 가장이라는 용어는 첩에 대한 남편을, 고공에 대한 고용주를 지칭하는 용어로,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법률상 외부에 대해서 가족을 대표하는 ‘집의 어른’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지적되어야 할 것은 가장의 권리를 따로 인정한다든가, 제도상의 특정직위로서의 가장제도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가장은 단지 가정의 일상생활에서 가족원에 대한 지휘통솔자 내지 대외적으로 가족을 대표하는 위치에 선 ‘웃어른’이었다. 가장을 한 가정의 지휘통솔자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가정업무의 관리권을 행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가장인 아버지가 활동능력이 있는 한 그는 가무관리권(家務管理權)을 행사하지만, 많은 경우에 아버지가 연로하면 관리권을 아들에게 물려주게 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도 아버지는 생존하는 동안 단순한 ‘집의 가장 웃어른’으로서의 가장의 지위에 머물러 있게 된다. 이것은 일본사회에서 나타나는 은거제도(隱居制度)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일본에서는 부모가 연로하여 가정의 운영 및 관리 일선에서 물러나게 될 때 모든 관리권을 후계자인 아들에게 물려주고 은퇴생활에 들어가게 되고, 또한 이런 지위의 전환에는 정교한 의례행사가 따르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은거제는 전혀 발견되지 않고 아무리 연로하여 거의 가무관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일지라도 한 가정의 가장 웃어른은 가장의 지위에 머물러 있게 된다. 그리고 가족원들은 일의 대소를 불문하고 항상 공손한 태도로 가장의 자문을 구하는 것이 전통적인 관습이었다.
    한 가족의 통솔자로서의 가장에게는 국가로부터 여러 가지 의무가 부과되었고 이를 어기는 가장은 처벌을 받게 되는 각종 규정이 『경국대전』 시행 후, 특히 숙종대부터 강화되었다. 그 중 중요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① 매 3년마다 호구신고(戶口申告)에 따라 작성되는 호적(戶籍)에 정확한 자료를 제공할 의무가 호주(戶主) 또는 호수(戶首)라고 불리는 가장에게 부과되었다. 즉, 호적작성을 위한 법전의 소정사항을 기재하는 신고서인 호구단자(戶口單子)에 누락이나 허위 없이 정확하게 기재하여 제출할 의무가 가장에게 지워졌다.
    ② 가장은 자녀를 적시에 혼인시킬 의무가 있다. 만일 딸을 30세가 넘도록 혼인시키지 않을 경우에는 처벌되었다.
    ③ 가장은 가족원이 범법행위를 하지 않도록 주의·감독할 의무가 있어, 국법을 어기는 행위를 교사하거나 주동하는 등의 일가공범(一家共犯)은 물론이고 가장이 가족원의 범법행위를 알든 모르든 또는 가담여부를 불문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처벌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연좌제(連坐制)는 근대 형법이 도입되면서 사라졌으나 도덕적으로 연좌의식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또한 우리의 전통적 가족제도하에서 가장은 공법상 한 가족의 대표자였다고 볼 수 있으며, 관청에서 민간에 어떤 명령을 내릴 때에도 반드시 가장에게 내려졌다. 또한, 대내적으로는 조상의 제사를 주재하고 가산(家産)을 관리하며 가족의 부양·분가·입양, 자녀의 혼인·교육·징계 등의 사법적(私法的)인 통제권이 인정되었다.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에 따르면 가계의 존속이 극히 중요시되었기 때문에 가족생활을 잘 다스리는 책임이 있는 가장의 권위가 특히 강조되었다.
    이런 점은 전통사회에서 각급 교육기관에서 사용된 수많은 교재들에 명백히 지적되어 있다. 즉, 가장은 가족원들을 엄격히 통제해야 하고 가족원들은 가장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할 것이 요구되었다.
    이런 전통은 광복 후의 각종 도덕교과서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비록 그 전과 같이 가장의 명령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가족원들은 집의 통솔자이며 가계계승의 책임자이기도 한 가장의 명령 및 권위에 복종하고 가장을 특별히 대우할 것이 요구되었다.
    이상과 같이 전통사회의 가장이라는 개념이 첩에 대한 부(夫), 또는 고공에 대한 고용주 등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서구사회의 가족제도와는 달리 가계의 연속성이 강조되고 있는 우리의 가족제도하에서는 한 가족 또는 생활집단으로서의 가정을 통솔하고 대외적으로 이 집단을 대표할 ‘웃어른’으로서의 가장의 개념은 현대에 와서도 뿌리깊이 남아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한국가족의 연구』(최재석,민중서관,1966)

    • 『조선가족제도연구』(김두헌,을유문화사,1949)

    • 「한국의 전통가족과 가장권」(박병호,『한국학보』2,일지사,1976)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머슴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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