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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전(曷懶甸)

고려시대사지명

 고려시대 흑수여진(黑水女眞)이 살던 지역의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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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명갈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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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고려시대 흑수여진(黑水女眞)이 살던 지역의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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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명칭 유래
갈라는 가란(曷懶, Karan)으로 발음되는 흑수(黑水, Kara 또는 Hara)의 용어로서 흑수여진을 의미한다.
당시 여진인은 만주 내지(內地)의 여러 강이 흑수에서 합류한다고 생각해 만주 내지의 여러 강에 해란(海蘭, Hairan)하·해랑(海浪, Hairang)하 등의 명칭을 붙였다. 그리고 이러한 강 유역에 사는 사람을 흑수인이라고 하였다. 하란(哈蘭, Haran)·가란전이라는 명칭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가란전이란 흑수여진의 지역을 의미하나, 그 호칭은 일개 지역명에서 나중에는 점차 행정구역의 명칭으로 변천되기도 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형성 및 변천
범위는 고려의 기미주(覊縻州) 설치 지역과 관련해 이설이 있다. 종래의 일본인 학자는 윤관의 9성 개척지역이 함흥평야에 한정된다는 함흥평야설을 제기하였다. 그래서 가란전의 지역 범위도 정평(定平) 이북으로부터 함관령을 잇는 함흥평야일대에 비정되었다. 그러나 가란전의 범위는 고려의 기미주의 계한(界限)인 길주 이북으로부터 두만강유역 일대를 포괄했으며, 그 치소는 오늘날의 경성(鏡城)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지역은 당시 두만강 유역으로 세력을 확장, 남하해오는 완안부(完顔部) 여진과 고려와의 사이에 완충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완안부 여진이 세력을 확대해 고려의 기미주를 공략하고 고려의 관문인 정주까지 내둔하였고, 그 뒤 기미주를 여진에게 돌려줌으로써 가란전의 지역범위는 고려의 정주 이북 두만강유역까지를 포괄하는 명칭으로 변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공험진(公嶮鎭)과 선춘령비(先春嶺碑)」(김구진,『백산학보(白山學報)』21,1976)

  • 「윤관구성재고(尹瓘九城再考)」(방동인,『백산학보(白山學報)』21,1976)

  • 「高麗尹瓘九城考」(稻葉岩吉,『史林』16-1·2,1931)

  • 「完顔氏の曷懶甸經略と尹瓘の九城の役」(池內宏,『滿鮮地理歷史硏究報告』9,1922; 『滿鮮史硏究 -中世篇 2-』,1937)

  • 「尹瓘征略地域考」(津田左右吉,『朝鮮歷史地理 2』,1913)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방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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