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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종대왕태실(景宗大王胎室)

    민속·인류문화재 | 유적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있는 조선후기 제20대 경종의 태를 봉안한 태실.   시도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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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있는 조선후기 제20대 경종의 태를 봉안한 태실.시도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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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호. 태봉마을의 서쪽으로 볼록하게 솟은 산봉우리가 있는데, 이 산을 속칭 태봉(胎峰)이라 부르고 있으며 후삼봉(後三峰)에서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끝에 위치한다.
    1688년(경종 14) 10월 22일에 후궁인 희빈장씨(禧嬪張氏)의 몸에서 숙종의 첫왕자로 태어나 왕실의 예에 따라 일등태봉인 이곳을 골라 이조판서인 안태사(按胎使) 심재(沈榟)의 집례로 다음해 2월 22일 진시(辰時)에 태항아리를 석함에 넣어 장태(藏胎)한 뒤 봉토하였다.
    후에 왕으로 즉위한 경종은 관례에 따라 그의 태실을 석물로 가봉(加封)하여야 하나 재위 4년중에 이를 이루지 못하고 승하하였으므로 다음의 왕인 1756년(영조 2)에 이르러 지금과 같은 석물로 장식된 태실로서 격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경종태실은 1831년(순조 31)에 주민 김군첨(金君瞻) 등이 태실직이에게 화를 입히려고 태실의 석물 일부를 훼손하는 변작사건이 일어나 다음해에 보수한 일이 있으며, 1928년에도 태항아리를 꺼내 가면서 파헤쳐져 석물이 엄정면사무소까지 옮겨져 있던 것을 1976년에 원위치에 복원하였다.
    태실은 중앙에 사각의 하대석을 놓고 그 위에 구형(球形)의 중동석(中童石)을 놓은 다음 보주가 있는 팔각의 옥개석을 얹어 석실을 만들고 주위에 팔각으로 전석(磚石)을 깔고 보호난간을 설치한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이며, 태실 앞에는 귀부와 이수를 갖추고 “경종대왕태실(景宗大王胎室)”이라 쓰여진 태실비가 세워져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8년)
    박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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