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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열성(居烈城)

건축문화재 | 유적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에 있는 남북국시대 포곡식으로 축조된 통일신라의 성곽.   산성. 시도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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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열성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에 있는 남북국시대 포곡식으로 축조된 통일신라의 성곽.산성. 시도기념물.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거열성은 거창군의 북서쪽에 위치한 해발 572m의 건흥산 정상부와 앞쪽의 봉우리 양옆의 계곡을 둘러싼 형태로 축성된 통일신라시대의 포곡식산성이다. 거열성은 ‘거열산성(居烈山城)’ 또는 ‘건흥산성(乾興山城)’이라고도 하는데,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와 상림리, 그리고 마리면 영승리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성 아래에서 성곽이 보이지 않게 산의 지세와 능선의 기복을 이용하여 축성하였으며, 성벽의 길이는 1,115m이고, 높이 8m, 폭은 아랫부분이 7m, 윗부분이 4m이다. 현재 경상남도 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역사적 변천
거열성이 위치하고 있는 거창군은 삼국시대에는 대가야(大加耶)의 영역에 속하였는데, 562년에 멸망된 이후에는 신라에 편입되었다. 이후 642년 7월에 백제 의자왕이 신라를 침입하여 신라 서쪽의 미후성(獼猴城)을 비롯하여 40여 성을 장악하였으며, 8월에는 대야성(大耶城)을 함락시키면서 백제의 영토가 되었다. 그러다가 백제가 멸망한 이후인 663년 2월에 신라는 백제부흥군의 거점이었던 거열성을 공격하여 되찾음으로써 약 20여 년 만에 거창지역을 회복하였다. 또한 673년에는 거열주(居列州)에 만흥사산성(萬興寺山城)을 쌓으면서 당(唐)과의 전쟁에 대비하였다.
현재의 거열성은 만흥사산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근거로 『대동지지』에 건흥산고성은 거열주의 만흥사산성으로 건립하였다는 기록과 고지도 등으로 미루어 보아 만흥산에는 만흥산고성이 있었다. 그리고 2004~2005년의 시굴조사에서 통일신라 이후의 유물이 집중적으로 확인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거열성은 1997년에 지표조사를 실시하여 거열성의 성벽 축조방식이 품(品)자형 쌓기를 주로 사용하였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체성(體城)은 협축과 편축을 모두 확인하였으며, 또한 내성(內城)과 건물지의 흔적도 확인하였다. 이것을 바탕으로 1997~2000년과 2003년에 체성 복원공사를 실시하여 전체의 40% 정도를 현대식 산성으로 복원하였다.
2004년 11월부터 2005년 2월까지 복원되지 않은 나머지 성벽과 성 내부의 추정 건물지 3개소를 중심으로 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체성의 현황, 축조시기, 축조방법, 현문식(懸門式)의 북문지 확인, 추정 제사건물지 등의 시설물을 확인하였고, 이것을 정밀하게 측정하였다. 또한 2008년 11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시굴조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북문지 서편 곡간의서벽 내부 시설에 대하여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체성(퇴성구), 집수시설 2기, 내부 석축을 확인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거창 거열산성: 서쪽 계곡부 체성과 집수시설 발굴조사』(거창군·(재)우리문화재연구원,2011)

  • 『한국고고학전문사전: 성곽·봉수편』(국립문화재연구소,2011)

  • 『거창 거열산성: 복원계획 수립을 위한 시굴조사』(거창군·(재)우리문화재연구원,2006)

  • 『거창의 역사와 문화』(거창군·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2004)

  • 『거창 거열산성 지표조사보고서』(거창군,1997)

  • 「석축 산성의 계곡부 체성과 못(池)에 관한 연구: 거창 거열성과 함안 성산산성을 중심으로」(권순강 외,『건축사연구』 20-3,2011)

  • 「신라 상·양·강주 군현성의 양상과 형성 과정」(박성현,『한국고대사연구』 55,2009)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박경원
개정 (2017년)
김덕원(명지대학교 사학과, 한국고대사)
영역닫기영역열기 관련 멀티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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