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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

    현대음악단체

     1945년 9월 15일 현제명(玄濟明)을 중심으로 서울에서 조직된 광복 이후 최초의 민간 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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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945년 9월 15일 현제명(玄濟明)을 중심으로 서울에서 조직된 광복 이후 최초의 민간 교향악단.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지휘자에 계정식(桂貞植), 악장 및 총무에 김생려(金生麗), 이사장은 현제명이었다.
    사회의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1945년 10월 창단기념공연을 수도극장(현 스칼라극장)에서 계정식의 지휘로 가졌는데, 그 때 연주곡목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6번」,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슈트라우스의 「왈츠」, 베를리오즈의 「헝가리행진곡」이었다.
    초기의 지휘는 주로 계정식이 담당하였고, 김성태(金聖泰)와 당시 문교부 음악과 협동과장이었던 해군중위 포크너(Faulkner) 등이 맡기도 하였다.
    1946년 계정식이 사임하자 임원식(林元植)이 상임지휘자가 되었고, 현제명의 도미로 인하여 독고 선(獨孤璇)이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사단법인 고려교향악협회로 개편되었다.
    그 뒤 여러 차례에 걸쳐 교향악 연주를 하였으나 재정난은 더욱 가중되었고, 1946년 6월의 제24회 정기연주를 마지막으로 임원식이 미국유학의 길을 떠나게 되자 자치위원회를 구성하여 안병소(安柄昭)가 지휘자가 되었고, 정희석(鄭熙錫)이 악장으로 피선되었다.
    그러나 경영은 계속 어려웠고, 제25회 정기연주회 이후에는 김인수(金仁洙)가 자치위원장으로 사재까지 희사하면서 운영하였으나 재정난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1948년 10월 제26회 정기연주회를 마지막으로 해산되고 말았다. 그 뒤 여러 단원들이 서울관현악단의 후신인 서울교향악단으로 흡수되어 활약하였으나, 이 악단도 6·25사변으로 해체되고, 전쟁 중 해군정훈음악대에 편입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한국양악백년사(韓國洋樂百年史)』 ( 이유선 ,음악춘추사,1985)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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