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자장(子長)으로, 수안현(守安縣)사람이다. 삼한공신(三韓功臣) 윤봉(尹逢)의 7세손으로, 검교호부상서(檢校戶部尙書) 윤유연(尹裕延)의 둘째 아들이다.
18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예부시에 두번 낙방하여 음보(蔭補)로 지수주사판관(知水州事判官)이 되었다. 현덕궁녹사(玄德宮錄事)를 거쳐 좌우위녹사참군사(左右衛錄事參軍事)가 되고 얼마 뒤 진도현령이 되었다.
그 뒤 신호위녹사참군사(神虎衛錄事參軍事)가 되었다가, 신호위별장에 임명되었으나 무관직이었으므로 사양하였다. 뒤에 합문지후(閤門祗侯)를 거쳐 감찰어사가 되고, 또 서북도(西北道)의 분대어사(分臺御史)가 되었다. 다시 내직으로 옮겨 상식국(尙食局)의 봉어(奉御)가 되었다가 상서도관원외랑(尙書都官員外郎)을 역임하였다.
인품이 단아하고 정직하여 할 말은 과감하게 하였으며, 항시 청렴하고 검소하여 정사를 바르게 하였으므로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