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함의 11대손 박태근(朴泰根) 등이 1982년에 영인·간행하였다. 권두에 송조빈(宋朝彬)의 서문과 권말에 박태근의 발문이 있다.
3권 1책. 필사본(영인). 국립중앙도서관, 국민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 서울대학교 도서관,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61수, 권2에 유묵서 7편, 숙인광주이씨유고(淑人廣州李氏遺稿)가 수록되어 있다. 「숙인광주이씨유고」에는 시 8수, 행장 1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3에 잡저로 계(啓) 1편, 송(頌) 1편, 전(傳) 2편, 예애(泄哀) 1편, 기(記) 1편, 독서해(讀書解) 1편, 설(說) 3편, 변(辨) 2편, 의(議) 2편, 유서 2편, 훈서(訓書) 1편, 서(書) 7편, 소(疏) 3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자연을 벗 삼아 학문과 심성 닦기를 다짐하는 내용으로, 저자의 청렴하고 고매한 기상이 나타나 있다. 서(書)는 아들들에게 보낸 서간으로, 병자호란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기 중 「풍토기(風土記)」는 맹자·순자·한유(韓愈) 등의 성설(性說)을 비교하여 논설한 내용이다. 병자호란 때 강릉에 유락(流落)하게 되어 그곳의 풍속이 괴이하고 인심이 잔인하여 사람을 살해하는 것을 보고,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보다 오히려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이 부합되지 않겠느냐고 암시하였다. 설 중 「일월행도설(日月行度說)」은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와 달이 주선(周旋)하는 역법(曆法)을 논술한 것이다.
서(書) 가운데 「승중영전유서(承重永傳遺書)」는 제례(祭禮) 중 기제(忌祭)와 절사(節祀)에 관해 논한 것이다. 모든 자손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한 이황(李愰)과, 이황의 이론이 부당하다고 한 이이(李珥)에 대해 각자의 장단점을 논설하였다. 「상태학사서이공식(上太學士書李公植)」은 홍문관대제학 이식(李植)에게 보낸 서간이다. 태조와 태종이 불목(不睦)할 때 태조가 함길도에서 귀환할 때까지의 기록과, 고려충신 길재(吉再)·김주(金澍)가 『고려사』에 기록되지 않음이 부당하므로 지금이라도 초록할 것을 요망하는 내용이다.
소의 「진시폐소(陳時弊疏)」는 국내정치에서 올바른 전제(田制)가 가장 중요하다는 의견을 역설하는 한편, 정치 전반의 맹점과 폐단에 대하여 시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이 소에서는 종친들의 토지점유가 과다하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어, 당시의 사회상과 그의 정치적 포부와 역량을 엿볼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