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9년(공양왕 1) 11월 문하시중 이성계(李成桂), 판삼사사 심덕부(沈德符), 찬성사 지용기(池湧奇)·정몽주(鄭夢周), 정당문학 설장수(偰長壽), 평리 성석린(成石璘), 지문하부사 조준(趙浚), 판자혜부사(判慈惠府事) 박위(朴葳), 밀직부사 정도전(鄭道傳) 등 9명이 흥국사(興國寺)에 모여 정창부원군(定昌府院君)을 추대하기로 하고, 다음 날 ‘폐가입진(廢假立眞 : 假王을 폐하고 眞王을 세운다는 뜻)’을 명분으로 거사를 꾸며 공양왕을 옹립하였다.
같은 해 12월에 이들 9명에 대해 공신책봉이 실시되고 중흥공신녹권(中興功臣錄券)이 하사되었다. 이 때 이성계는 분충정난광복섭리좌명공신(奮忠定難匡復燮理佐命功臣)·화령군개국충의백(和寧郡開國忠義伯)·식읍일천호식실봉삼백호(食邑一千戶食實封三百戶)에 봉해지고, 토지 200결(結)과 노비 20구(口)가 주어졌다.
심덕부는 충근양절익찬좌명공신(忠勤亮節翊贊佐命功臣)·청성군충의백(靑城郡忠義伯)에 봉해지고, 토지 150결과 노비 15구가 주어졌다.
정몽주는 순충논도좌명공신(純忠論道佐命功臣)·익성군충의군(益城郡忠義君), 설장수는 정난공신(定難功臣)·충의군(忠義君), 성석린은 단성보절찬화공신(端誠保節贊化功臣)·창성군충의군(昌城郡忠義君), 조준은 조선군충의군(朝鮮郡忠義君), 정도전은 추충논도좌명공신(推忠論道佐命功臣)·충의군, 설장수·박위는 충의군에 책봉되었고, 토지 100결과 노비 10구가 각각 주어졌다.
또한 이들 모두에게는 벽상도형(壁上圖形)되는 영예와 더불어 부모와 아내를 봉작(封爵)하고, 자손에게 음직(蔭職)을 제수하며, 10세에 이르기까지 사면되는 특전이 베풀어졌다. 이 때 책봉된 공신의 수가 9명이므로 9공신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 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