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유백(裕伯), 호는 오주(鰲洲). 한형(韓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간(韓幹)이고, 아버지는 한서(韓瑞)이다. 한위(韓衛)에게 입양되었다.
1624년(인조 2) 진사가 되고, 163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찰방이 되었으나 권신 김자점(金自點)을 탄핵하다가 함창에 유배되었다. 곧 풀려났으나 벼슬에 뜻을 버리고 후진양성에 힘쓰던 중,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 왕을 호종하였다.
강화에 극력 반대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아우와 함께 영해에 은거하였다. 1646년 민회빈 강씨(愍懷嬪姜氏: 昭顯世子嬪)의 사사(賜死)를 반대하다가 유배당한 좌의정 이경여(李敬輿), 대사헌 홍무적(洪茂績)을 옹호하는 소를 올리는 한편 「백설가(白雪歌)」를 지어 이경여가 화를 입은 것을 한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