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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삼(李根三)

연극인물

 해방 이후 「원고지」, 「아벨만의 재판」, 「거룩한 직업」 등의 작품을 낸 작가.   극작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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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원고지」, 「아벨만의 재판」, 「거룩한 직업」 등의 작품을 낸 작가.극작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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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929년 평안남도 평양시에서 3남매 중 막내로 출생했다. 평양 종로소학교를 마치고 평양사범학교 심상과에 진학했다. 신의주 학생사건으로 촉발된 반공운동에 참여했다가 1946년 5학년 때 퇴학을 당하고, 탄압을 피해 단신으로 월남했다. 1947년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 문과에 편입하여 1952년 영문과를 졸업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통역장교로 근무하다가, 1952년 육사 외국어과 교관이 되어 영어를 가르쳤다. 1955년 그의 나이 26세 때 동국대학교 영문과 교수가 되었다. 다음 해에 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간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연극학과 대학원에 입학하여 토마스 패터슨(Thomas Patterson) 교수 지도하에 연극이론과 희곡창작을 공부했다. 이 시기 서사극과 부조리극 중심의 현대극을 접하고 새로운 연극에 매료되었다. 그가 영어로 쓴 첫 희곡 「끝없는 실마리」와 「다리 밑에서」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1959년 석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하여 동국대학교 교수로 복직했고 연극영화과 창설에 관여했다. 1962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로 이직했고, 1969년에 서강대학교 신문방송과로 옮겨 이곳에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재직했다.
귀국 직후인 1960년 『사상계』에 단막극 「원고지」를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내에서 왕성한 극작 활동을 펼쳤다. 표현주의극, 부조리극 양식을 활용한 이 극은 당시 리얼리즘극 위주의 한국 연극계에 커다란 충격과 자극을 주었다. 이후 우화극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1960), 재판극 「데모스테스의 재판」(1964) 등의 새로운 양식을 실험했다.
그의 희극세계는 크게 4가지 경향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권력 혹은 정치 풍자로 대표작은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 「제18공화국」(1965), 「30일간의 야유회」(1974), 「아벨만의 재판」(1975) 등이다. 두 번째는 속물적 현대인 풍자로 「거룩한 직업」(1961), 「국물 있사옵니다」(1966), 「향교의 손님」(1988) 등이 대표작이다. 세 번째는 인생과 연극의 동일성을 그리는 경향으로 「유랑극단」(1971)이 대표작이다. 네 번째는 노년연극으로 「내일, 그리고 또 내일」(1985), 「막차 탄 동기동창」(1991), 「어떤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1998) 등이 대표작이다.
그는 평생 희곡 56편을 발표했고 작품의 대부분이 공연되었는데, 이는 그의 희곡이 뛰어난 연극성과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현대적 연극기법과 현대적 감수성을 담은 새로운 희극을 발표함으로써 한국현대연극의 장을 연 극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반사실주의 수법, 알레고리, 서사극, 부조리극, 표현주의극 등 현대극 양식들을 실험함으로써 한국연극의 현대성 확립에 기여했다. 2003년 11월 28일 작고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상훈
국민훈장 모란장, 옥관문화훈장을 수상했고, 1992년에는 예술원상, 2001년에는 대산문학상(희곡부문)을 받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14년)
김성희(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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