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대한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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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단체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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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 단체.
연원 및 변천

간도대한민회는 1919년 2월 18일 설립된 조선독립의사부(이칭: 조선독립운동의사부)에 연원을 둔다.

1919년 3월 용정촌(龍井村) 독립시위활동이 진압 된 후, 향후 활동계획에 대한 논의를 거쳐 조선독립 의사부는 조선독립운동기성회로 개편되었다. 임시정부가 설립된 후 조선독립기성회는 이름을 대한국민회(이칭: 간도대한민회|간도국민회|북간도대한국민회|대한민회)로 바꾸었다.

처음에 근거지를 연길현(延吉縣) 춘양향(春陽鄕)에 두었다가 옮겨 지인향(志仁鄕) 의난구(依蘭溝) 30리 일대에 두고, 무장 독립 투쟁을 전개하였다. 구춘선(具春先)·방위룡(方渭龍)·최명록(崔明祿) 등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회의 대부분은 기독교도들이며, 천도교·대종교도가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초기에는 왕청현 일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부를 설치하여 임시정부의 행정 연락 사무소로서의 기능을 하는 비교적 온건한 단체로 출범하였다. 1920년 간도대한민회는 조선인 청년을 결집해 경호대와 국민회군을 조직하였다. 경호대 총사령에 이용, 국민회군 사령에 안무를 임명하였다. 무력 투쟁 방법을 채택하면서 과격, 치열한 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회원은 5백여 명에 달하였으며, 주로 20대와 30대 연령층으로 믿음이 강한 교인으로 구성되어, 독립 투쟁을 신앙시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지도자로는 구춘선 외에 김규찬(金奎燦)·김성극(金星極)·이춘승(李春承)·최문인(崔文仁)·홍두극(洪斗極) 등이었다.

1920년 5월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합체하여 제1군사령부를 결성하였다. 1920년 5월 27일북로사령부로 개명했다. 군정서·의군단(義軍團)·신민단(新民團)·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 등과 연계하여 투쟁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법통성』(이현희, 동방도서, 1987)
『한국민족광부투쟁사』(이현희, 정음문화사, 1987)
『한국독립운동사』2∼5(국사편찬위원회, 1966∼1969)
집필자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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