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계청(季淸), 호는 삼청당(三淸堂). 할아버지는 청주목사 강인(姜麟)이며, 아버지는 목사 강세징(姜世徵)이다.
1552년(명종 7) 사마시에 합격, 생원이 된 뒤 1556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66년 전의현감(全義縣監)으로 재직중 벼슬을 잘한 수령으로 뽑혀 승품(陞品)되었다.
1581년(선조 13) 공주목사를 지낼 때까지 여섯 고을의 수령을 지냈다. 공주목사로 있을 때 사간원에서 그를 탐오(貪汚)하다고 지목하며 파직하기를 청하여 선조가 윤허하였다는 기록이 실록에 보이지만, 그가 재물에 달관하였으며 목민관의 귀감이 되었다는 평판이 우세하였다. 청주목사 재임 때 고을 사람들은 그를 ‘삼청선생(三淸先生)’이라 불렀는데, 자가 계청이며 관직이 청주목사이고 정치가 청렴하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뒤에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