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문등록 ()

유성룡 종손가 문적 중 군문등록
유성룡 종손가 문적 중 군문등록
조선시대사
문헌
조선시대 문신 유성룡이 1595년 10월부터 1596년 12월까지 군무(軍務)에 관한 공문을 모아 엮은 등록. 관찬서.
정의
조선시대 문신 유성룡이 1595년 10월부터 1596년 12월까지 군무(軍務)에 관한 공문을 모아 엮은 등록. 관찬서.
서지적 사항

1책. 필사본. 서(序)와 발문이 간략하게 적혀 있으나 편집 연대는 밝혀져 있지 않다. 당시 군무는 체찰부(體察府) 주관하에 있었으므로 첫머리에 ‘체찰사군문등록’이라고 이름붙였다.

내용

유성룡은 1595년 10월부터 1598년 봄까지 영의정 겸 경기·황해·평안·함경의 4도체찰사(四道體察使)를 지낸 뒤 퇴직하였다. 퇴직 후 청리(廳吏) 방수(方秀)에게 그 당시의 기록을 뽑아서 계초(啓草)와 문이(文移)로 구분하고, 이것을 ‘군문등록’이라 이름하였다. 그러나 이미 편찬 당시에 상당한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책머리에는 필자 자필의 짧은 서문이 있어 편찬 동기와 지난날의 회고가 기록되어 있다. 본문은 전교(傳敎) 1건, 계초 61건, 문이 105건으로 총 167건이 있다. 이것을 연도별로 보면 1595년 10월에서 12월까지가 46건(전교 1건, 계초 14건, 문이 31건)이고, 1596년 1월에서 12월까지가 121건(계초 47건, 문이 74건)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군병교련(軍兵敎練)·방비(防備)·양향(糧餉)·설창(設倉)·기계예비(器械預備)·민폐이혁(民弊釐革)·전세(田稅)·수군전강(水軍戰舡)의 사보(査報) 등 국방 문제를 비롯해 정치 전반에 걸친 것이다.

마지막에는 자필의 간단한 발문으로, 고향에 퇴거해 한가롭게 여유를 가지고 기록을 정리하는 소감을 적고 있다.

원본은 경상북도 안동의 유성룡의 종손인 승우(承佑)가 소장하고, 후사본(後寫本)이 규장각도서에 있다. 간행본으로는 ≪징비록 懲毖錄≫의 일부로 개편되어 제15·16권에 수록되었다. 또한, 계초 부분은 ≪근포집 芹曝集≫과 ≪서애문집 西厓文集≫의 계사부(啓辭部)에도 수록되어 있다.

그 밖에 복사본이 1933년에 조선사편수실 ≪조선사료총간 朝鮮史料叢刊≫ 제13집으로 나왔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중책을 맡고 있던 필자의 주변에 있었던 기록이기 때문에 당시의 군사 문제를 비롯한 정치·경제 및 대일 관계 등을 소상하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북방 국경의 경비에 관한 기사도 기록되어 있어서 당시 점차 일어나고 있던 청나라와의 교섭과 만주와의 관계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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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박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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