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명 ()

유교
인물
일제강점기 때, 『양재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고경(顧卿)
양재(陽齋)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1년(고종 28)
사망 연도
1974년
본관
안동(安東)
출생지
전라북도 정읍시
정의
일제강점기 때, 『양재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고경(顧卿), 호는 양재(陽齋). 고부 출신. 아버지는 권원(權源)이고, 어머니는 강릉유씨(江陵劉氏)로 유종갑(劉鍾甲)의 딸이다. 전우(田愚)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10년 경술국치 뒤로는 스승을 따라 서해의 군산도(君山島)·왕등도(旺嶝島)·계화도(繼華島) 등지에서 15년 동안 학문에 몰두하여 화도주석(華島柱石: 중심되는 인물이라는 뜻)이라고 불리었다.

그 뒤 스승의 문집·예설(禮說)·연보(年譜)·척독(尺牘) 등을 편집, 출간하였으며, 1937년 47세 때 척독을 편집하기 위해서 전국 팔도에 통문을 발송한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그 때 삭발을 강요당하자, 장도(粧刀)를 가지고 스스로 목을 찔러 피가 낭자하였으므로, 왜경들이 감복하여 풀어주었다.

경학·예설·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유학의 진흥을 위해 면학당을 세워 후진들을 양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고부 태산사(台山祠)에 봉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양재집(陽齋集)』 11책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양재집(陽齋集)』
집필자
이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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