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金剛)은 ‘김(金)’이 성씨, ‘강(剛)’이 이름인 것으로 보기도 하였으나, 『삼국사기』에서 해당 시기의 진골 출신자들은 성씨를 표기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음을 고려할 때 ‘금강’ 자체가 이름이라고 여겨진다. 구체적인 가계(家系)나 인적 사항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주요 활동
금강은 655년(태종무열왕 2) 정월에 이찬(伊湌)의 관등으로 상대등(上大等)에 임명되었다. 같은 시기에 중시(中侍)로는 파진찬(波珍飡)문충(文忠)이 임명되었다. 태종무열왕 즉위 이후 첫 상대등 임명자로서 당시 정치적으로 중요한 직위를 차지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나, 그 밖에 관력(官歷)이나 구체적 행적이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5년이 지난 660년(태종무열왕 7년) 정월에 사망하였는데, 사망한 그의 뒤를 이어 이찬으로서 상대등에 임명된 이가 김유신(金庾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