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 ()

목차
관련 정보
나주 금성관 정측면
나주 금성관 정측면
인문지리
지명
전라남도 나주 지역의 옛 지명.
이칭
이칭
발라군(發羅郡), 통의(通義), 금산군(錦山郡), 나주(羅州), 진해군(鎭海軍)
목차
정의
전라남도 나주 지역의 옛 지명.
내용

원래 백제의 발라군(發羅郡, 또는 通義)이었는데, 신라의 경덕왕 때 비로소 금산군(錦山郡) 또는 금성이라 고치고 회진(會津)·철야(鐵冶)·여황(艅艎) 등을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940년(태조 23) 나주(羅州)로 고치고, 983년(성종 2) 나주목(羅州牧)으로 격상시켜, 전국 12목 중 하나가 되었다. 995년 절도사(節度使)를 두고 진해군(鎭海軍)이라 하고 해양도(海陽道)에 예속시켰다. 1010년(현종 1) 현종은 거란을 피하여 잠시 이곳에 행차하여 10여 일간 머무르다가 환도하였다. 1018년 목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하였고, 이웃 여러 군·현을 거느렸으며, 세조 때 진(鎭)이 설치되었다. 1645년(인조 23) 향리(鄕吏)가 목사 이갱생(李更生)을 구타하는 사건이 일어나 금성현(錦城縣)으로 격하시켰다. 금성이라는 이름이 두 번째로 쓰인 것이다. 그 뒤 나주로 환원되고 현을 되풀이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관련 미디어 (2)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