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알지 설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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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권1) / 탈해왕조(석탈해신화)
삼국유사(권1) / 탈해왕조(석탈해신화)
구비문학
작품
경주김씨의 시조 김알지에 관한 신화.
목차
정의
경주김씨의 시조 김알지에 관한 신화.
내용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2 김알지 탈해왕대조(金閼智脫解王代條)와 『삼국사기』신라본기 탈해이사금조(脫解尼師今條)에 수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탈해왕 9년 3월에 왕이 밤중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숲속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호공(瓠公)을 보내어 이를 살펴보도록 하였다.

호공이 시림에 다다라 보니, 금빛의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달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서 울고 있었다. 이 사실을 듣고 왕은 궤짝을 가져오게 하여 열어 보니 조그마한 사내아이가 그 속에 들어 있었는데, 용모가 기이하게 뛰어났다.

왕은 기뻐하며 하늘이 그에게 아들을 내려보낸 것이라 하여 거두어 길렀으니, 그 아이는 자라감에 따라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나서 그 이름을 알지라 하였다. 또, 금빛 궤짝에서 나옴을 연유로 하여 성을 김씨라 부르고, 처음 발견되었던 장소인 시림을 고쳐 계림(鷄林)이라 이름하고, 이로써 국호를 삼았다.

한편, 『삼국유사』에는 이와는 상당히 다른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즉, 왕이 직접 닭 우는 소리를 들은 것이 아니라 영평(永平 : 後漢 明帝의 연호) 3년 경신(庚申) 8월 4일에 호공이 밤에 월성(月城) 서리(西里)를 지나다가 큰 빛[大光明]이 시림 속에 비침을 보았다.

붉은 구름[紫雲]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뻗쳤는데, 구름 한가운데 황금 궤짝이 나무 끝에 걸려 있었고, 빛은 그 궤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또한, 흰 닭[白鷄]이 그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왕에게 이를 아룀에 왕은 그 숲으로 가서 궤를 열어 보니 어린 남자[童男] 하나가 누워 있다가 곧 일어났다.

이는 마치 박혁거세의 옛일과 같으므로 그 말에 인하여 알지라 이름을 지으니, 알지는 곧 우리말의 어린애를 뜻한다. 이 아이를 안고 대궐로 돌아오니 뭇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르고 기뻐하여 모두 뛰어놀았다.

왕은 알지를 태자로 책봉하였으나 뒤에 파사(婆娑)에게 사양하여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씨라 하였다.

알지는 열한(熱漢)을 낳고, 열한은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는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는 욱부(郁部)를 낳고, 욱부는 구도(俱道)를 낳고, 구도는 미추(未鄒)를 낳았으며, 이 미추가 왕위에 오르니 신라의 김씨는 알지로부터 시작되었다.

시조신화는 일반적으로 신화 주인공의 출생 근원이 어디인가에 따라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이는 인간 생명의 강하(降下)로서의 천생관(天生觀)과 인간 생명의 용출(湧出)로서의 지생관(地生觀)에 의거한다.

천생관에 의한 천강시조신화(天降始祖神話)는 다시 「동명왕신화」 · 「단군신화」와 같이 신성혼(神聖婚)에 의하여 의신화(擬神化)되는 것과, 「박혁거세신화」 · 「김수로신화」와 같이 알의 형상으로 강천한다는 난생설화와 「김알지신화」처럼 처음부터 인간의 모습으로 강천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한국설화문학연구』(장덕순, 서울대학교출판부, 1978)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장덕순(전 서울대학교, 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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