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 ()

국방
인물
해방 이후 공군 10전투비행단 초대 단장, 제1전투훈련 비행단장 등을 역임한 군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20년
사망 연도
1957년(실종 접수 3년후 사망처리)
출생지
서울 사직동
관련 사건
6·25전쟁
정의
해방 이후 공군 10전투비행단 초대 단장, 제1전투훈련 비행단장 등을 역임한 군인.
개설

아버지는 일본 육군장교 출신인 김준원(金埈元)이며, 초대 공군참모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김정렬(金貞烈)의 동생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서울 사직동에서 태어나 1931년 경기공립중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일본 간사이대학[關西大學] 법과에 재학중 징집되어 일본 육군 예비사관학교를 수료하였다.

일본군 육군 소위로 함흥지구에 주둔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 후 미군정청 총위부 정보국장대리를 역임하였으며, 항공부대 창설을 역설하다가 여의치 않자 1947년 직책과 부위(副尉)의 계급을 내놓았다. 공군창설 7인의 간부 가운데 한 사람으로 1948년 5월 조선경비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 항공부대 간부로 일하였다.

1949년 공군이 독립되면서 공군으로 전출하여 공군비행단 참모장에 보임되었다. 1951년 공군 대령으로 진급했다. 6·25전쟁 초기 제10전투비행단장을 지내며 F-51(무스탱)기로 30회 이상 출격했다. 1951년 8월 해인사 폭격 명령을 거부하여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보존하는 데 공을 세웠다. 1951년부터 1952년까지 미공군대학에서 항공작전에 관한 교육을 이수한 뒤 귀국하여 1953년 공군 10전투비행단 초대 단장에 취임하여 동부전선의 한국지상군에 대한 근접 항공지원작전과 후방 차단작전을 지휘하였다.

1953년 준장으로 승진하여 제1전투훈련 비행단장이 되었으며, 1954년 3월 5일 F-51(무스탱)기로 사천기지(泗川基地)를 이륙하여 강릉기지로 향하던 중 기상악화로 동해안 묵호상공에서 실종되었다. 6·25전쟁 때 을지훈장·금성충무훈장·금성을지무공훈장·미비행훈장(美飛行勳章) 등을 받았으며, 1954년 대통령수장·미공로훈장(美功勞勳章) 등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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