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명거(冥擧), 호는 동곡(東谷). 김정윤(金廷尹)의 손자이다. 한때 부모의 권유로 향시에 나가 합격하기도 하였으나, 공명에 대한 뜻을 버리고 후학을 가르치는 데 전념하여,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수백 명에 이르렀다.
그는 『심경(心經)』·『근사록(近思錄)』·『주자대전』 등 성리학 서적의 연구에 일생을 보냈으며, 말년에는 역학을 깊이 탐독하였다.
천지와 사물의 변천과정과 길흉과 소장(消長)의 심묘한 근원을 찾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또, 자기의 생각을 노래로 지어 제자들을 가르치니 그것이 바로 「의로가(義路歌)」·「안택사(安宅詞)」이다.
학행과 덕성이 뛰어나, 그 고을에 부임하는 수령들은 연말에 쌀과 고기를 보내어 정을 표하였다. 특히, 관찰사로 부임한 권이진(權以鎭)·민응수(閔應洙)·윤순(尹淳)·이종성(李宗城)·이종백(李宗白) 등은 편지로 안부를 묻고, 윤헌주(尹憲柱)와 송인명(宋寅明)이 관찰사로 왔을 때와 조명교(趙命敎)·이성효(李聖孝)가 어사로 왔을 때는 포상하여 조정에 보고하였다.
뒤에 심리사(審理使) 이일제(李日濟)의 천거로 예빈시참봉이 되었다. 저서로는 『동곡집(東谷集)』이 있다. 1816년에 관찰사 이태중(李台重)의 건의로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